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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Jan 14. 2024

내가 살던 기숙사

첫 번째 일기

17살에 처음으로 학교 기숙사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떤 식의 보호와 감시를 받으면서 꽤나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

1학년이 짐을 옮길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기숙사 입구에 모여 바쁘게 룸메이트 명단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기숙사의 생김새보다도 두렵고 설레었던 건 누가 내 룸메이트가 되느냐였다. 늦게 자는 애일까, 저녁에 샤워를 할까 깨자마자 샤워를 할까, 자기 전엔 뭘할까, 아침은 꼭 먹는 애일까. 이미 오리엔테이션을 2주 전에 마치고 난 뒤라 원하는 룸메이트도 있었다.


'아, 내가 바라던 애는 아니네.' 내 룸메이트의 이름을 확인한 뒤 그 애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짐을 풀기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마주친 적 없던 애인데.'

복도가 아주 소란했다.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와도 같이 들어오는 애들. 양손 한가득 짐을 들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짐을 풀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도 내 룸메이트는 오지 않았다. 엄마를 먼저 보내고 사감 선생님을 찾았다. "혹시 제 룸메이트 OOO은 언제 오나요?" 사감 선생님께서 명단을 찾아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이를 어쩌지. OOO은 입학을 취소했는데... 당분간 혼자 지내야겠다." 그렇게 우리 학년에서 나만 정말 혼자서 기숙사에 살게 되었다. 집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잠드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매일이 아주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아침 점호가 늘 있었다. 시간은 오전 6시. 짧게 점호를 마치면 바로 아침 태권도를 하러 강당에 모였다. 눈곱 낀 얼굴, 반쯤 감겨있는 눈, 조금씩 섞여나는 머리 냄새와 같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잠에서 깼다. 45분 정도의 태권도가 끝나면 몇몇은 곧장 식당으로, 또 다른 몇몇은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룸메이트가 없는 나는 아침이 소란할 이유가 없었다. 아침점호가 시작하기도 전에 싹 씻은 상태로, 끝나면 바로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식당으로 갔다. 아침은 반드시 챙겨먹었다. 그렇게 하면 늘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나였다. 애들이 조금씩 반으로 모여들 즈음에야 오리엔테이션에서 친해진 애들과 말을 섞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완전한 고요의 시간이었다.


-


고등학교 기숙사는 엄청난 곳이었다. 일촉즉발의 순간들이 편재한 곳. 여자애들끼리 모여있을 때 어떨 수 있는지 그 때서야 겨우 알았다.

처음 친구들과 모여 늦은 밤 몰래 섹스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새벽 2시에 인터넷 연결이 끊길 때까지 메신저로 대화하고, 몰래 다른 방에 들어가고(일명 타방), 기숙사 근처 가장 맛있었던 파닭(파+간장소스+치킨)을 배달시켜 품에 안고 조심스레 들어오고. 그러다 6개월이 지나면 짐을 빼서 이사를 하고,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나고, 서로 욕하고 싸우다가 또 새벽 내내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날 학교에 나가는 삶. 나는 그런 일들에 휩쓸렸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휩쓸려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그러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갔다. 첫 달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리 잠만 자다가 월요일에 다시 학교로 등교하기를 반복했다. 새벽 2시에 잠들어 다음날 6시에 일어나는 삶은 생기 넘치는 어린 나이에도 조금 버거웠다. 그러다 두 달째, 세 달째, 네 달째, 기숙사에서의 삶이 조금씩 적응되어감에 따라 일주일에 한번씩 도착한 집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공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일도 없는 것 같은데 아주 소란한, 그리고 아주 불안한.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느꼈던 늦은 밤의 불안함같은 것들이 서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면했다.

나의 첫 기숙사 생활과 어설픔, 그런 온갖 것들에 그저 휩쓸리고 싶었다.


-


내게도 룸메이트가 생겼다. 4인실을 쓴 적도 있었지만 그것과 조금은 다른 느낌의, 단 한 명의 룸메이트. 그는 큐티라는 것을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했다. 나는 여전히, 그러나 그 때는 더더욱, 종교에 대해 몰랐다. 아무튼 그 종교라는 것을 그가 아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공부를 잘하고 조금은 유머감각도 있는 친구였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다. 헤어질 때도 자신이 원해서 헤어졌다. 나는 그때까지 남자친구가 없었다. 어떻게 키스를 하는 건지도 몰랐지만 아주 궁금해했다. 기숙사로 들어오기 바로 직전 1년 간, 아 얘 보러 내가 학교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 친구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인기 많은 예쁜 여자애들은 금방 소문이 났다. 나는 지독히도 평범했고, 어쩌면 평범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정도로 외모나 보여지는 모습, 내가 여자라는 것, 그런 것들에 크게 관심이 없이 16년을 살아왔다. 어떤 얼굴이, 어떤 체형이, 어떤 식의 말투와 행동이 남자들에게 사랑받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공부만큼이나 꽤나 중요한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자신감이라는 것을 갑자기 인식하면서 순식간에 그것을 잃기에 이르렀다. 예쁘지 않으니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룸메이트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저 친구의 자신감은 종교라는 것에서 나오는 건가? 뭔가 외부로 방출되지 않는 에너지같은 것을 알게 모르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원천이 조금 궁금했다. 당시의 나는 그저 예뻐지고 싶어서 제모를 시작하고, 옷이라는 것을 사보고, 화장하는 방법에 대해 슬쩍 훔쳐보고, 외모의 단점을 발견하기 급급했으니까.

엄마, 아빠, 동생과 살던 집에서 나와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이런건가? 기존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거기에 관심을 쏟는 것. 하지만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애들은 이런 것들을 다 챙기면서 어떻게 공부'까지'하는 거지?

그러나 이 중 어떤 것도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저 생각하다가 잠에 들었다.


-


10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기숙사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다시 대학교 기숙사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대학교 기숙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신기하고 즐거운 무언가를,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신세계를, 이곳에서 나는 찾아 헤매지 않는다. 8-9개월에 한 번씩 집에 가 두 달 전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돌아온다. 서늘함도, 그저 그런 내 외모도, 어떤 식의 타협을 하며 건조하게 살아가는 내 삶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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