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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Jan 22. 2024

불안할 때 하는 생각

두 번째 일기

누군가 내게 어디에서 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집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어디에서 안정감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주저없이 또 집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게 집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니 집을 떠난다는 것은, 불안과 안정을 동시에 잃는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19살, 그 이전에도 불안은 있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늦게 오는데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아빠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한 번에 열지 못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나와 동생이 자는 방에 들어와 문을 벌컥 열었을 때.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러나 어떤 최악의 밤이 지나가도 나와 동생, 엄마는 꼭 서로를 향한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건 주로 자기 직전 2시간이 넘는 대화로, 그 다음 날 아침 모두 같은 시간에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함께 마주하며 가능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갈 힘이 남아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증명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고3 학생들에게 그러하듯, 나에게도 입시 부담이라는 불안이 다가왔다. 별 생각없이 잘 되겠거니- 하던 시간이 지나 기어코 내게도 찾아온 시간. 수능이 100일 정도 남았을 무렵, 씻고 자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으나 대신 주변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엄마 또 친구랑 싸웠어? 라고 물었던 것 외에는. 엄마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명확히 알았던 것 같다. 내게 불안과 안정을 줄 수 있는 공간에서 지금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애정을 확인했던 그 과정이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든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 당시의 내게는 그것이 꼭 필요했다는 것. 그러니 나의 입시 실패는 어쩌면 자명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싸준, 분명히 맛있었을 수능 도시락은 수리영역 시험을 마친 후 거의 입에 대지 못했고, PC방에서 했던 가채점 결과를 받아든 나는 울면서 택시를 타고 집 근처를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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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어떤 도약의 순간이 있다. 물론 나락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도.

재수를 시작한 그 해는 집이 불안과 동시에 안정을 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3년의 기숙사 생활 이후, 나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늘 주변을 살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내게 불안을 주지만 동시에 안정을 주는 존재들의 안녕을. 그들이 안녕하지 못하면 나 역시 흔들린다. 정박할 현실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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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는 내가 처음으로 (의무교육이 이뤄지는) 학교가 아닌 곳에서, 스스로 현실에 발 딛고 서기 위한 정박의 시도였다. 물론 돈에 의해 강제된 시작이었다. 심리적 불안은 물론 물질적 불안까지 껴안게 된 나는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지하철을 타고 조금은 더 가야 하는 곳까지 골고루 찾았다.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는 나를 어디에서 받아줄까,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나. 고민은 현실이 되었고, 결국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받아준 곳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베스킨라빈스 아르바이트는 8개월 정도 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것들을 했다. 과외, 학원 알바, 카페 알바, 펍에서의 서빙, 고깃집 알바, 레스토랑/식당 알바, 단기 아르바이트 등. 동시에 정해진 학부 수업들과 마감이 있는 과제, 귀찮을 때는 아무렇게나 입을 수 있는 과잠, 매일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에 있는 식당들이 내게 어떤 식의 안정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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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내가 발 딛고 선 곳의 문제를 외면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외연을 확장하고 내면은 외면하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 순간의 나를 질책하고 싶지 않다. 아마 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든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의 나는 딱 그 정도는 가능했을 것이다.

친구와 점심에는 캘리포니아 롤이나 로제 떡볶이를 먹었고, 후식으로는 버블티나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꼭 먹었다. 베스킨라빈스에 갈 때면 아르바이트생에게 특히 더 친절하려고 애썼다. 가끔 과할 정도로 딱딱하게 얼어있는 아이스크림이 보인다면 그냥 차선의 메뉴를 골랐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의 경우 '남자'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술집에서, 어제 누구를 만났는지, 연락은 꾸준히 오는지, 네 마음은 어떤지, 등등. 많은 경우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났지만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했다. 실은 그 친구가 누군가를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만나더라도 아주 짧게만 만났으면 했다. 우리의 이런 매일 비슷한 순간들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거의 매일 같은 음식을 정해진 시간에 함께 나눌 수 있었을까.

더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건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학부 수업에서도, 남자를 만나는 일에서도, 모두 그랬다. 그러나 집에 관해서라면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마주하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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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안정을 주는 것들을 생각하려 애쓴다. 다소 안정적이라 느껴지는 순간에는 오히려 내게 불안을 주는 것들을 생각한다. 놀랍도록 많은 순간에 그 둘은 같다. 점점 빠르게 나이 들어가는 것만 같은 엄마의 존재,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졸업 이후의 삶, 영화와 책 속 현실, 다섯 명을 거의 넘지 않는 선에서 관계가 유지되는 가까운 사람들, 일주일에 하루는 꼭 해야하는 각종 집안일과 매일 해야하는 설거지와 같은 것들까지. 나는 이런 것들에서 안정을 찾고 불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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