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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Nov 11. 2021

삶이 지겹다면, 루틴을 만들어야 할 때

일상을 긍정적 방향으로 세팅하는 나에 대한 예의

덥수룩한 머리를 잘랐다. 아마도 거의 1년 만에 미용실을 간 것 같다. 울퉁불퉁 두상에 쭉 뻗은 직모, 풍성한 머리숱은 어지간히 손질하지 않으면 단정하기 어려워 항상 질끈 묶고 다녔다. 자리에 앉자 처음 방문한 미용실인데도 원장님은 엄청 오랜만에 미용실 오셨죠? 라며 단박에 알아보신다. 미용실에 가면 괜히 어색하고 위축된다. 그러다 보니 잘 가지 않는다. 편치 않은 미용실을 오랜만에 찾아간 이유는 일종의 의지가 반영된 활동이었다.






지금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젠가 흐트러질 거야



내 안에는 오래된 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나는 한결같이 꾸준히 하지 못할 거야. 지금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금세 사그라들 거야'

무언가에 꽂혀 파이팅을 다해 살다가도 이러다 말겠지라며 나의 열정과 성실을 의심하는 마음이 슬슬 올라온다.  하다만 것들이 점점 쌓이고 나이는 먹어가고 그러니 이제는 끈기 있게 지속하지 않은 모습이 성장하고 싶은 나의 발목을 잡을까 두려운 것이다.  


지금은 성실하지 못한 내가 못마땅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성실을 거부한 사람이었다. 자유로움, 창의성, 예술적 감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 때문이었다. 어디서 그런 겉멋을 들였는지는 몰라도 한 때 나는 그게 낭만인 줄 알았다.

 

중학교 1학년, 입학식을 마치고 배정된 교실에 온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이렇게 앉아서 앞으로 6년을 꼼짝없이 지내야 하는 사실이 지겹고 답답했다. 입학 첫째 주로 기억하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교실 뒤 거울 앞으로 가서 가위로 앞머리를 잘랐다. 쥐 파먹은 꼴이 되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제야 조금 파악하기로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내 의지로 구성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도 없다고 여겨졌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교실 밖으로 뛰어나갈 용기를 내진 못하고 머리를 마구 잘라버렸던 것 같다. 당연히 그렇게 막 자른 머리는 나의 일상에 조금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대책 없이 위로 뜨는 앞머리로 아침마다 짜증이 생겼을 뿐이다.


다행히 학교 생활의 의미를 찾았다. 배치고사 성적(라테는 중학교 입학 전 시험을 봤다.)으로 선생님은 편애하셨고, 딱 중간으로 입학한 나는 무관심의 영역에 있었다. 나도 그 관심을 받아보고 싶었다. 3월 말 모의고사를 잘 쳐보리라는 목표가 생겼고 덕분에 낯설고 갑갑하기만 하던 중1의 첫 달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결과가 좋았고 상위권 진입에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최상위권의 삶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이다. 최상위권 성적을 친구들을 보니, 일단 가정환경이야 잘 알지 못하니 제외하고 높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또한 모순적이게도 관심을 받고 싶어 시작한 공부였지만, 최상위권 아이들이 받는 지속적인 어른들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럽고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관심의 사각지대를 찾았다. '456' 딱 중간 자리. 학급 10등 정도는 무시받지 않으며 그렇다고 큰 관심도 받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는 학생이 되어 어른들로부터 꽤 자유롭다. 크게 혼날 일도 없고 대단한 기대로 어깨가 무거울 일도 없다.


이 시기의 습관과 꾀가 나의 열정을 좀 먹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혼나지 않을 만큼, 무시받지 않을 만큼의 수준으로만 하는 버릇을 들여 나를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경험의 기회를 거세하였다. 스스로가 나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남의눈을 피하는 사각지대였을 뿐, 나를 위한 벙커는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반복이 주는 안정감을 처음 느꼈다. 그 안정감 아이가 엄마에 대한 신뢰바탕을 이루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신뢰감을 충족한 아이가 역설적이게도 모험과 도전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다. 어쩌면 나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며 자유롭기를 열망한다면 반복을 통한 안정감을 먼저 확보했어야 했다. 반복은 성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계속한다는 것은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 온 힘을 다해 사계절을 지내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루틴 routine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 예를 들어 어느 한 선수가 경기 3시간 전부터 꼭 15바퀴 뛰고 체조를 한다거나, 운동장의 선을 밟지 않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 따위가 이에 해당된다. [네이버 국어사전]


루틴이 있다는 것은 삶이 건강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행동과 무엇을 하면 나를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드는지 알고 있으며 이를 선택하여 실행하는 일상은 견고하다. 루틴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에게 가장 이로운 것들로 구성하여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습관적인 일상이 자신의 이로움과 상관없이 관성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달리, 루틴은 습관적인 반복된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자신을 최적으로 상태로 이끌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습관적인 일상'과는 구별된다.


얼마 전, <밀라논나> 정명숙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았다. 젊은 시절의 모습보다 70이 넘은 지금이 더 아름답고 생기 있게 다가왔다. '아침, 저녁 루틴' 영상을 보고 지금의 아름다움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과 정성을 다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만든 결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하루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찬찬히 나의 하루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비하면 아주 많은 횟수로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날들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좋을 때는 좋지만 나쁠 때는 자기 파괴적인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습관이다. 단단하게 발목에 묶인 이 고리는 한 번에 자를 수 있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계속, 반복해서 톱질을 해야 한다.


나를 이롭게 하는 것들로 채워진 루틴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못된 습들을 끊어내는 반복에 힘을 실어준다. 나는 중학생 시절처럼 '정신 차려!'라는 신호를 내게 보내고 싶을 때 머리를 자른다. 달라진 점은 그때처럼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간다. 또 좋아하는 목욕탕을 간다. 무아지경으로 때를 밀며 내 몸의 구석구석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식당일을 시작하기 전, 커피믹스를 한잔 마신다. 손님이 없어 초조할 때면 얼마 전부터는 인스턴트 밀크티를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이러다 말겠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대로 둔다. 대신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8년 정도 반복해보니 다시 일어서는 시간이 제법 짧아졌다. 마음의 근력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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