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된 사람 Feb 02. 2022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이천 년의 데이터에서 나를 묻다

딱 63일이 걸렸다. 2021년 11월 30일에서 2022년 1월 31일까지 논어를 필사하며 독학해나갔다.

도무지 어림짐작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20년 전 맺은 인연으로 여전히 내게 스승이신 선생님과의 카톡대화로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고전이라는 틀을 떼어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논어가 보인다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자왈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不知禮 無以立也(부지례 무이입야)
不知言 無以知人也(부지언 무이지인야)

공자가 말했다.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논어 요왈편 3장

자기 계발과 심리치료프로그램이 어디든 흔하게 있지만, '나'를 알기란 더욱 어려운 아이러니의 시대다.

처세와 대화법에 관한 각종 책들이 베스트셀러이지만 벗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좋은 사람인지는 더욱 대답하기 어려운 시대에 당신과 나는 살고 있다.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가득 채운 스펙들 중, 정말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앎이란 있을까? 


사실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命), 나이 들수록 사람 관계는 더 모르겠고(禮), 지식(言)이라고는 졸업장이 없다면 증명조차 할 수 없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그렇다고 벌써 될 대로 되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인류의 수명이 100세까지 길어진 마당에 아직 살날이 꽤 많이 남았다. 기왕에 살아가는 삶이라면 당도하고 싶은 곳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보고(問津) 가봐야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선택을 받아온 고전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을만한 대상이다. 


겨우 한 번 읽어낸 논어에 나는 두루뭉술하고 거친 질문을 해댔다. 또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뒤를 따라가느라 바빴다. 

 





우리 모두는 하루 24시간이라는 플랫폼으로 자기 삶의 세계로 들어간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따라 어떤 이는 연식보다 빈약한 데이터 양을 가지고 있을 테고, 어떤 이는 나이답지 않은 너른 세계를 품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디쯤인지 모르겠으나, 업데이트를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있다. 


얼마 전, 선배를 만났다. 나와 같은 듯 다른 삶을 사는 선배와 이틀 동안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원 없이 이야기 나누었다. 여전히 내게 이 오글거리는 소재를 융통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그들의 존재가 감사했다. 논어를 독학 중이라는 내게 그들은 '너는 공자, 우리는 노자'라고 농담하였다. 나는 무위는 노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군자가 군자 다울 때 무위로써 최고의 정치가 발현됨을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공자의 논어가 그를 성현의 반열에 박제하여 생활과 분리시켜 위정자의 통치 논리로 굳혀버린 것처럼 노자의 도덕경에도 모종의 왜곡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시작.

업데이트를 하시겠습니까?


이전 07화 잔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