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흙덩이 하나가 내 하루를 바꾸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쵸코와 산책을 하던 길, 살곶이 공원 근처에서 우연히 구청이 운영하는 텃밭을 발견했다. 작물들이 줄지어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채소값도 오르고, 요즘은 도시농부라는 이름으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이 새로운 취미라기에, 2월 무렵 구청에 신청해 조그만 밭을 배정받았다. 서울에서만 자라 밭일 경험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농사와 닿은 기억이라곤 회사 봉사활동으로 강원도 영월에서 고추 농사 뒷정리를 도운 게 전부였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씨앗을 고르고, 쿠팡에서 애플수박·오이·참외 씨앗을 주문하는 일조차 마치 큰 도전처럼 느껴졌다.
3월이 되자 구청에서 상추 모종과 열무 씨앗, 그리고 밭에 뿌릴 비료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봄이라 하기에 날씨가 차가워, 싹이 잘 자라줄까 걱정이 앞섰다. 집에서도 배양틀을 마련해 씨앗을 틔워 보고, 상추 서너 개 모종은 화분에 옮겨 테라스에 두고 아침마다 물을 주었다. 가까이 두고 정성껏 돌보면 더 잘 크리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다. 밭에 심은 상추 모종은 잎을 넓혀 갔고, 열무도 땅을 헤집고 나왔다. 반면 집 테라스에 둔 모종은 힘을 잃고, 과일 씨앗은 싹조차 내기 어려워 보였다. 매일 물을 주었지만 기운이 없었다. 결국 지저분하다 싶어 밭 한쪽에 다시 옮겨 심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싹이 트고 푸른 잎이 돋아났다. 상추는 생기를 찾아 무성히 자라났고, 과일 씨앗들은 정말 싹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몇 번이나 식물도감 앱으로 확인할 정도였다.
그렇게 초보 농부의 소박한 손길 속에서 밭은 점차 풍성해졌다. 햇볕과 바람이 있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살아난 것이다. 그 뒤로는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다. 무성해진 상추는 이웃과 나눠야 할 정도였고, 열무는 김치를 담가 먹을 만큼 거두었다. 처음엔 잡초인 줄 알았던 싹들이 애플수박과 참외로 자라 열매를 맺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집에서 애써 가꿀 때는 오히려 힘겹게 버텼고, 밭에 옮겨 놓으니 스스로 자라났다. 아파트 테라스보다 거친 야외가 생명에겐 더 알맞은 자리였다. 사람 손길이 가까우면 더 잘 자랄 것 같아 아파트 테라스에서 키워 보았지만, 햇볕과 비, 바람이 있는 야외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다. 같은 흙일지라도, 조용히 갇힌 공간보다 거칠고 넓은 터전이 생명에겐 더 어울리는 자리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곡식은 땅을 따라 자라고, 사람은 하늘을 따라 산다(穀隨土長 人隨天生).” 한다. 곡식이 땅의 품을 벗어나 자랄 수 없듯, 사람 또한 하늘의 품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작은 밭에서 새삼 깨달았다. 식물도 사람도 하늘 아래서 하늘의 힘으로 길러지는 생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