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추운 날씨에 아내를 위해 슬리퍼를 신겨주는 것일 뿐.
20년 겨울, 딸아이의 대학입시를 끝내며 숨을 고르던 즈음, 캐나다로 이민 갔던 고등학교 절친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마주 앉아 아이들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그리고 지나간 청춘의 추억을 나눴다.
친구의 부모님은 학창 시절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신 분들이셨다. 누나들과 화투를 치며 웃던 시간도 아직 마음속에 선명했다. 오랜 세월 제대로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에, 친구와 함께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구순을 맞으셨고, 어머님도 팔순을 넘기신 연세였다. 어머님은 건강이 많이 기울었지만, 여전히 나를 기억하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아파트가 개천가에 있어 겨울바람이 더 매섭게 스며드는 듯했다. 그때, 아버님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시더니 보조기에 의지해 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후 슬리퍼를 들고 나오셔서 아무 말씀 없이 어머님 발에 신겨주셨다.
본인도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아내의 발이 시릴까 걱정하는 마음에 몸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것은 부탁받은 일도, 의무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남편의 사랑이었다.
그 애틋한 사랑은 마무리를 했다. 이듬해 봄, 어머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님도 식사를 물리시다가 그다음 해 겨울, 어머님 곁으로 가셨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묻게 된다.
나는 과연 내 아내와 딸을 저토록 사랑하고 있는가.
말없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며,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한 채 살고 있는가.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부의 도는 인륜의 근본이다.”
사람의 관계 중에서도 부부의 사랑과 화합은 모든 덕의 뿌리라는 뜻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사랑을 감정의 불꽃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내일도, 내년에도, 함께 늙어가는 세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이다.
배우자의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나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는 삶. 그것이야말로 부부의 사랑을 채워가는 지혜이며, 오래도록 이어지는 따뜻한 인연의 비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