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플래카드

by 쵸코 아빠

다름이 혐오로 바뀌는 순간, 믿음과 정의는 얼마나 멀어지는가.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정당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빨간색, 파란색 속에는 대부분 상대를 향한 비난과 혐오가 담겨 있다. 최근에는 특히 중국인을 겨냥한 메시지가 많다. “중국인이 복지 혜택을 누린다”, “중국인이 한국 땅의 건물주가 된다” 같은 문구들이다.


그런데 이런 구호가 기독교를 앞세운 정당에서 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이런 갈등과 혐오로 가득 찬 세상일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과연 같은 말일까? 믿는다고 해서 저절로 정의로워지는 걸까, 아니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정의로운 걸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성경은 분명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나 너희 중에서 난 자에게나 다 한 법을 적용할 것이라.” (민수기 15:29)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차별이 아니라 하나 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종교 정치인들은 오히려 분열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자리를 지킨다. 과연 그런 이들을 따르는 것이 믿음일까.


로마서에는 이렇게 경고한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로마서 16:17-18)


어쩌면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계셨던 세상에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없었다. 그저 권력자와 힘없는 백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이 권력자를 위해 이 땅에 오셨겠는가. 결국 정치 이념은 인간이 만든 도구일 뿐이다. 권력자의 세상을 지탱하는 수단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었다.


다르다는 건 죄가 아니다. 성별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가진 것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다름을 빌미 삼아 다른 이를 밟고 자기 이익을 챙긴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길 위의 플래카드 속 메시지를 지나치며, 나는 생각한다. 다름을 혐오로 바꾸지 않고, 연대로 이어가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서는 길일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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