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 궁전>, 폴란드 속 다문화의 정수
가끔 폴란드 여행을 검색해 보면, 이상하리만치 폴란드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인다. 그분들 말로는 폴란드 여행이 비유하자면 유럽의 숨겨진 맛집이라나? 한편 다른 나라에 비해 결정적인 무언가가 없다는 이유로 폴란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투리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겉만 쓱 보고 지나가는 여행자 입장이라면, 솔직히 취향에 따라서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유럽은 먼저 알고 가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출처는 투리 학교의 모 교수님 뇌피셜)'. 물론 눈호강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동네가 유럽 국가들이지만, 그 안의 깊은 역사와 배경을 모르고서야 당신이 지나간 곳을 온전히 즐겼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고? 그만큼 기나긴 서사와 전통을 향유한 대륙이 '유럽'이니까. 이것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 아니, 대부분의 유럽 도시/지역들에 해당하는 말이다.
마침 투리가 브로츠와프를 연재 중이니, 이 참에 브로츠와프의 특징을 얘기해 볼까? 한 학기 동안 폴란드 여기저기를 다닌 입장으로서, 투리에게 '브로츠와프'는 어떤 도시인가? 폴란드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서 '브로츠와프'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한국 교민이 제일 많은 동네, 또 누군가는 난쟁이가 제일 많은 동네라고 할 수 있겠지만, 투리는 폴란드의 '멜팅 팟'이라고 답하고 싶다. 구시가지에 관한 글에서, 본인은 이 도시가 여러 국가들이 거쳐간 전적이 있는 동네라고 언급했다. 중부 유럽의 중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 특징상, 브로츠와프는 주인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독일인, 폴란드인, 체코인, 유대인 등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는 독일계 주민들과 폴란드인 사이의 교체가 대거 일어나면서 인구 구성까지도 큰 변화가 생긴다.
이렇듯 수많은 문화와 정체성이 충돌하면서, 이 도시는 그러한 요소들이 융합되어 역사적으로 독특한 구성을 가진다. 이른바 폴란드의 문화적 '멜팅 팟'! 그렇다고 특정 민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폴란드 특성상 캘리포니아 주처럼 다민족 혼합 상태를 띤다는 말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폴란드 안에서만 따졌을 때 그나마 문화와 민족이 많이 섞였다는 얘기다.
'브로츠와프 왕궁'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많은 역사적인 흔적들을 담고 있는 곳이다. 이 왕궁은 시대별로 다양한 유물과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왕궁으로 향하던 당시의 투리는 그런 거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겠다는 욕심 하나로 바쁘게 왕궁으로 향했을 뿐.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전체 건물 사진까지 찍지는 못했지만, 왕궁은 90도 돌아간 'ㄷ'자 형태의 건물이었다. 왕궁 근처에는 원래 정원도 딸려 있었는데, 이 날 입장 시간을 놓쳐서 그랬는지 투리는 정원에는 입장하지 못했다.
박물관에 입장해서 티켓 구매 완료! 티켓 안에는 다른 추천 박물관들의 리스트도 같이 나와 있었다. 어쨌거나 전시관에 들어가 보자!
전시관 안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설명이 가득한 스크린이었다. 전시관은 0층은 브로츠와프의 시대별 역사와 관련 유물들, 1층은 도시를 지배하던 위정자들의 시대상 문화양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0층의 역사관 위주로 진행을 해 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는 역사적으로 주인이 바뀐 전적이 많다. 800년경부터 실레시아인들이 이 땅에 마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4세기까지는 지배 세력이 보혜미아 공국(現 체코의 전신 국가)이랑 폴란드랑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한다. 다 하나하나 설명하면 머리가 아프니까 전시관의 흐름대로만 설명을 하면, 해당 전시관은 960년대 피아스트 왕조의 시초가 되는 미에슈코 1세의 통치에서부터 시작한다.
참고로 도시 '브로츠와프'라는 이름은 그보다 몇십 년 전에 브로츠와프를 지배한 보혜미아의 왕 브라티슬라프 1세(Vratislaus I, 888~921)의 이름을 따서 폴란드식 발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브로츠와프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브라티슬라프가 이 마을을 발전시키면서 비로소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어느 지배세력이 그렇듯, 한 왕조가 통치를 하면 권력을 위한 내부 다툼이 항상 심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피아스트 왕조도 다를 게 없어서, 보혜미아 왕가와도 엎치락뒤치락하고 형제끼리도 싸우는 등 많은 중간과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13세기 초쯤 되었을 때 피아스트 왕조의 폴란드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피아스트 왕조의 통합은 결정적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사진 위의 왼쪽 남성은 당시의 왕 헨리크 2세(Henryk II Pobożny, 1196~1241)인데, 그는 1241년 레그니차(Legnica)에서 연합군을 형성해 몽골군에 맞서 싸우나 결국 패배하고 본인도 전사하고 만다. 폴란드 사람들은 훗날 그를 신앙심 깊은 기독교 후원자이자 용감한 군주로 경건공(Pobożny)으로 기린다.
어쨌든 그다음 코너로. 해당 방은 보혜미아의 지배시기를 중점적으로 모아놓은 방인데, 보헤미아가 직접적으로 지배권을 확립한 1335년에서 1526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라고 해도, 정확히 말하면 보혜미아에 실권을 가진 유럽 강대국의 왕들이 돌아가면서 주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사실 어떤 왕이 지배했든 간에, 브로츠와프는 포즈난 등의 도시와는 달리 자치권이 강한 도시로 인정받았다. 즉,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법과 행정을 처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거기에다가 특정 품목의 경우 독점권을 부여받거나 소금 운송의 면제권 등 여러 특권들도 부여받았다. 여기에 여러 상공업의 발달로 브로츠와프는 부를 쌓고 상업이 활발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보혜미아 왕가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만큼 문화의 교류도 활발했는데, 당시의 중심 도시는 브라티슬라프였다. 이때 해당 도시와 브로츠와프 사이에도 여러 유물이나 장인, 예술가들 간의 이동이 오갔다고 한다. 위 사진의 그림 역시 그때의 유물에 속하는데, 방 안의 유물들을 보면 당시의 브로츠와프가 받은 영향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대충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브라티슬라프는 지금의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해당한다.
뭐 사실 그렇게 얘기해도, 유럽 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투리 입장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이긴 하다. 다만 실제 벨라루스(유럽 국가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 이름 아니에요 ㅜ) 친구 얘기를 들으면, 확실히 그 차이가 명확해 보인다. 쉽게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인이랑 일본인을 보면 대충 외모 구별이 되는데, 일반 백인 입장에서는 하나도 모르는 느낌이랄까(이게 비유가 맞나...). 아무튼 정리하면 이 때는 체코나 헝가리 느낌을 좀 많이 받은 때라는 거.
다음 전시관은 합스부르크의 지배 시기(1526~1741). 브로츠와프는 이때 또 정체성이 한바탕 흔들리는데, 일단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앙 행정체계에 영향을 받아 자치권이 약해진다. 그리고 시대 흐름상 (루터 쪽의) 개신교의 수용이 시작되는데, 당시 가톨릭이었던 합스부르크 황제의 정책으로 인해 종교갈등이 일어난다. 한편 브로츠와프의 대다수는 독일계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가톨릭 스타일인 것 같으나 실상은 개신교세가 강한 느낌이랄까.
당연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화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 저렇게 배경이 짬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예술적으로는 바로크의 영향이 물씬 풍기고, 예수회 대학(現 브로츠와프 대학의 전신) 같은 가톨릭 냄새가 강한 건물들이 이 시기에 꽤 들어온다. 당시 시민들이 독일계가 다수였기 때문에 독일풍 느낌이 강해진 건 덤이고.
보면 상당히 합스부르크 지배 시절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보헤미아 귀족들이 합스부르크의 종교 갈등 때문에 빡쳐서 한창 전쟁이었을 때의 메달도 있었고, 여러 성직자들과 왕들의 초상화도 감상할 수 있었다. 본인이 이렇게 사진으로 올리니까 많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설명문이 좀 많을 뿐이지 전시관이 엄청 큰 편도 아니라서 그냥 훑어보는 식으로 둘러본다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뭐 암튼! 이 글에서는 브로츠와프 왕궁의 전시관들 중 중세시대까지의 내용을 담아보았다! 지금까지 투리가 했던 설명과 유물들을 보면서, 이 도시는 참으로 많은 문화와 정체성이 옛날부터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멜팅 팟'의 하이라이트는 이 글에서 다 둘러본 셈. 이제 이 글을 본 독자 여러분은, '브로츠와프'가 뭐가 다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이런 역사를 가진 브로츠와프마저 시간이 흘러 나치독일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없게 되는데....다음 글에서는 근현대 시대의 브로츠와프와 그 당시의 흔적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브로츠와프 왕궁'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오늘도 긴 글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