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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기행] 퇴마를 안 하는 이 성당 속 괴담

<브로츠와프 성 메리 성당>, 최고의 전망대와 일화를 가진 다리의 소유주

by 흑투리


이번 글의 교훈: "결혼은 타이밍이다"


자, 이번 글을 시작하기 전에 투리는 한 가지 선서를 하겠습니다.

"투리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차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브런치사이트랑 구글을 눈팅하다 제목에 끌려버린 분들. 무슨 의문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안다.


성당인데 퇴마를 안 하는 성당이 어디에 있는데?

기행글에 무슨 뜬금없는 결혼 얘기? 남녀차별 금지 선서?


이런 고민들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시작은 투리가 브로츠와프에 들른 바로 이 성당에 있다. 그리고 브로츠와프에 왔다면, 경치를 좋아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는 성당이기도 하다. 그럼 투리 인생에서 두 번째로 방문한 성당, <브로츠와프 성 메리 성당>에 대하여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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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폴란드의 전시관들은 오후 5시나 6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교회와 성당도 마찬가지이다. 투리도 막 <브로츠와프 왕궁> 구경을 마치고 오후 5시쯤 밖으로 나온 참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어딘가를 방문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남는다. 박물관을 방문하기에는 확실히 무리인 시간대. 그러면 어디를 갈까. 고민을 잠깐 하다가. 우연히 브로츠와프의 유명한 성당이 근처에 한 군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곳이 바로 위 사진의 성당.




20250315_170031.jpg 성당 근처의 친숙한 난쟁이 동상. 브로츠와프 하면 역시 도시에 퍼진 난쟁이들이다.




성당에 대한 소개를 좀 하자면, 이 성당은 정식 명칭이 '브로츠와프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Katedra św. Marii Magdaleny we Wrocławiu)'으로 13세기에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은 구시가지 시장 광장 근처의 셰프스카(Szewska) 거리와 라차르스카(Laciarska) 거리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투리도 버스 없이 이 성당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20250315_170043.jpg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성당의 모습




곧 닫혀서 그런가, 예배당 안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 있었다. 뭔가 해서 따라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성당에 들어온 투리는 곧장 그 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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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투리는 폴란드의 여러 성당들을 둘러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 성당 안에서 뭔가를 오래 기다리면서 줄을 섰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말은 즉슨, 투리가 관광지를 아주 잘 찾아왔다는 말이겠지? 투리의 관광 촉이 딱 맞아떨어졌던 순간이었다.





20250315_171052.jpg 성당 탑으로 올라가는 티켓 발권 완료! 이 때는 아직 학생 카드를 발급받기 전이라 일반으로 샀다ㅜ




차분히 기다린 끝에, 투리를 반긴 것은 티켓 부스였다. 본인이 산 티켓이 성당 위의 탑으로 가는 티켓이라는 것을 안 뒤에야, 투리는 무엇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던 것인지 깨달았다. 본인은 원래 성공하는 인생은 좁은 길로 가야 한다는 주의이지만, 관광에 한해서는 남들 따라가는 것도 답이다. 사람이 많다면 볼거리가 많다는 이 말은 불변의 진리(?).




20250315_170245.jpg 탑으로 올라가기 전의 기념품들 사진




해당 성당이 세워진 시기는 13세기로 추정되며, 현재는 폴란드 가톨릭의 대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브로츠와프 구시가지와 함께 폴란드의 국가 사적(Historic Monument of Poland)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한편 성당의 메리(=마리아)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동반자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어서, 정확한 구별을 위해 살짝 구별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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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구경을 마치고 성당이 문을 닫기 전에 빠르게 내부를 찍어보았다.




브로츠와프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성당도 세계 2차 대전 당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해당 글의 앞내용인 25화, 26화 <브로츠와프 왕궁>을 보신 분들이라면 브로츠와프가 얼마나 처절한 역사를 가졌는지 이해할 것이다. 특히 아쉬운 점은, 그 역사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전설적인 '죄인의 종(Sinner's Bell)'도 이때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성당은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오랜 기간을 거쳐 재건되지만, 종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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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지루한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고, 이제 꼭대기로 한 번 올라가 보자! 성당에 좀 질린 관광객의 입장이라면, 사실상 이 탑이 관광 이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저 위는 이 성당에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250315_171122.jpg 성당을 오르는 도중 발견한 중간의 빈 공간.




이 성당의 탑은 '다리'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의 특징인데, '마녀의 다리(Penitent Bridge, Mostek Czarownic)'라고 불린다. 갑자기 성당 얘기에 웬 마녀가 나오냐고? 그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었던 이 모든 의문의 중심에 바로 이 '마녀의 다리'가 있다.




20250315_171211.jpg 올라가면서 발견한 성당 안 한 조각상에 대한 설명문. 참고로 지금 투리가 할 얘기 역시 다른 설명문에 담겨 있었다.




그러면 성당 위를 올라가면서 천천히 얘기를 진행해 보자. 곧 투리가 올라갈 이 다리에는 매우 괴이한 전설이 있는데, 다리 위에 보이는 그림자들은 남자를 유혹하면서도 결혼이나 가사노동을 회피하던 젊은 여성들의 영혼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이상한 얘기가 어디서 나왔냐고? 투리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저 전설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 일화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브로츠와프의 어떤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20250315_171815.jpg 계속 올라가는 중.




Tekla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그 외모와 비례하는 허영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직 자기를 꾸미는 데만 혈안이었다. 도시를 돌아다닐 때마다 그녀의 외모는 수많은 소년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본인은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결혼? 하! 결혼해서 일할 바에야, 차라리 지금처럼 즐기면서 사는 게 낫지'라는 마음으로 코웃음치면서. 이런 그녀를 부모님은 항상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20250315_171833.jpg 아직 멀었다. 더 올라가야 해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지만, Tekla는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드레스랑 무도회나 밝히면서, 그녀는 향락과 사치에 빠져 있었다. 하도 결혼을 안 하니까 엄마가 몇 번이나 간청을 했으나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고, 어느 순간 열받은 아빠는 Tekla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다음 날, 그녀는 납치당해 두 높은 탑 사이의 다리에 갇히게 된다.




20250315_172018.jpg 좀 더 올라가다가 중간에 발견한 깨알 포토스폿. Tekla와 막달라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인생의 남은 날까지 다리를 계속 청소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라푼젤의 탑보다 높은 45M나 되는 꼭대기에 Tekla의 울음과 비명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오랜 시간을 그 위에서 지낸다.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녀의 아름다움과 젊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늙고 추한 모습만이 남는다. 이제는 Tekla가 노쇠해 빗자루를 쓸 힘마저 없어지자, 이를 불쌍히 본 Martynka라는 착한 마녀는 Tekla 몰래 빗자루를 훔쳐 브로츠와프의 중앙광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아본다.





20250315_172029.jpg 꼭대기까지 다 왔다!




그때 마녀는 바닥을 기어가는 한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다. 그녀가 계속 그 남자를 주시하자, 남자는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자기를 왜 계속 보고만 있냐고 툴툴거린다. 그 남자는 Michał이라는 마법사였는데, 알고 보니 안경과 지팡이가 없어져서 힘이 없어진 것이었다. 마녀가 안경과 지팡이를 찾아주자, 감동한 마법사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마녀는 Tekla를 탑에서 그만 내려오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소원을 빌고 마녀가 탑으로 돌아오자, Tekla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마녀는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후 그 다리는 사치에 빠진 여자들을 위한 교훈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한다.




20250315_175842.jpg 탑에서 내려오면서 찍은 한 공간의 사진




이것이 일화의 줄거리인데, 실제로 '사교를 즐기고 가정을 거부하는 여성'은 당시 사회에서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는 진짜 마녀재판이 한창이었는데, 미혼이거나 혼자 사는 노파 등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 당했다고 한다. 저 일화도 그러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것이 투리의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본인이 너무 진지한 성격이라서 그런가. 성당은 왜 그런 마녀들이랑 귀신들을 가만히 놔두어서 이미지에 활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지만, 성당과 귀신. 둘의 조합이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일화에는 마녀가 배우는 '위치크래프트'라는 말도 언급된다. 이런 기상천외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성 메리 성당! 심상치가 않다.


한편 당시의 섬뜩한 배경을 빼고 현대를 사는 투리의 시선에서 Tekla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역시나 결혼은 타이밍인 것 같다. 남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결혼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아름다운 타이밍이 있는데, 그게 상대적으로 남자에 비해서는 빠른 편이라고 느껴진다. 다시 말하지만 투리는 남녀차별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남자와 여자의 평균 결혼 나이를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인들'의 기준에서는 말이다(러시아 같은 나라들을 보면 여자들의 초혼 평균 나이가 훨씬 어린 걸로 봐서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투리도 이에 어느 정도 수긍하지만, Tekla가 살았을 때는 이 일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여겨졌을까? 그때는 여성의 인권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을 텐데. 심지어 정신연령은 소녀 그대로에 사치와 향락 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안 썼으니, Tekla는 결혼 유무를 떠나서 본인 인생에 책임감이 없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일화이긴 하지만, 왜 남자인 투리마저 찔리는 느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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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잡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경치 구경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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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셀카를 찍으면서 사진인증을 하고 있었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다리는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정말 좁았고, 반대편 끝에도 탑이 있었다. 반대쪽 탑의 문은 잠겨 있어서 나가려면 올라왔던 곳으로 다시 내려가야 했다. 어쨌거나 바깥이 뭐가 그렇게 아름답나 해서 옆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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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바깥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전까지 투리는 살면서 유럽 도시의 전경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첫 직관에 눈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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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투리는 이미 폴란드의 수많은 전경들을 접하였기에 내성이 조금 생겼으나(?), 당시에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진으로 보니까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다리 위에 있었던 당시에는 농담이 아니라 내가 이런 경치를 볼 일이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얘기다.




20250315_172447.jpg 잠깐만, 그런데 저기에 뭔가 예상치 못한 게 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데...




20250315_172659.jpg 역시나 여기에도 난쟁이(아님 마녀?) 동상이 있었구나! 이렇게 투리가 발견한 브로츠와프 동상 리스트에 2마리가 더 추가되었다




가격은 비록 18zt였지만, 투리에게는 그 값어치가 18zt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말고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순간이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르니까.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가고, 그에 따라 자리를 비켜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투리는 한동안 내려오지 못했다. 그저 본인에게 주어진 그 시간 동안, 마음껏 눈으로 구경하고 누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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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음 일정이 늦어질까 봐 6시 이전에 내려오기는 했지만, 투리는 충분히 브로츠와프의 경치를 구경하고 성당에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봐도 투리가 올랐던 전망대들 중에서는 딱 적당히 음미하고 누렸던 경험이 저때였던 것 같다. 물론 브로츠와프 이외에도, 투리는 인상적인 도시의 전경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단스크, 코펜하겐, 함부르크 등등등. 하지만 유럽의 전경에 있어서, 투리에게 가장 처음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도시는 앞으로도 영원히 브로츠와프로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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