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문장이 될 때

하나의 소원이 됩니다.

by 슈재

최근에 유튜브 세상에서 체류하다가 오래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유튜버가 아버지가 큰 병으로 수술을 받게 되어 무척 위독하시고,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으니 같이 기도해달라는 안타까운 글이었어요. 저는 그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무척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로또도 사지 않고 저의 행운을 모으는 사람인데, 제가 모은 행운의 반절을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나아지시길 바랍니다'라는 응원 댓글이었습니다.


직접 아는 사람도 아닌데 진심을 담아 응원하는 그 마음도 멋있었지만, '행운을 모은다'는 그분의 마음이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어요.

로또조차 사지 않고 '행운을 모은다'는 표현은, 그분도 자신이 가진 어떤 운이나 기회를 '정말 이뤄지기 바라는 것'을 위해 아껴두는 것일 테죠.


그 말이 크게 와닿았던 것은 저 또한 소원을 빌 때,

정말 신중하고, 진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빌거든요.


생각보다, 인생에서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물론, '로또 1등 당첨되고 싶다'하는 바람은 언제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원을 들어준다고 알려진 것들 ㅡ 생일 케이크의 촛불, 떨어지는 별똥별, 등산하다 마주친 석상 같은 것들 ㅡ 을 마주하는 것은 자주 있지 않거든요.

그런 기회에 내 소망을 말할 때, 저는 정말 간절하게 그것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가능한 이뤄질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소원을 빕니다.


저한테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소원으로 빈다는 것은, 하나의 기회를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한 사람의 간절함과 진심의 결정체인 소원의 진정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소원은 막연한 꿈이 아니라 저한테 현실로 다가오길 바라는 일이거든요.


한 문장에 나의 바람과, 간절함을 어떻게 최대치로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비로소 그 문장을 눈 꾹 감고 발음할 때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진짜로 마주하게 됩니다.




한동안 제 소원은 '나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이, 나에 대해 같은 마음이기를' 이었어요.

저의 소원은 단순히 세상이 내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바람이 현실이 되기 위해 내가 노력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해서..

모아왔던 간절함의 순간들을 스스로 망친 것 같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진심을 다해 기대하고 바랬던 내 마음에 부족한 내가 끝까지 응답해 주지 못해서 너무 힘듭니다.



최근에 저는 또 한 번 진심을 담은 소원을 빌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는데요.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를 덧없이 붙잡을 수도 없었기에 이번에 새로 빌었던 소원이 무엇인지,

왜 저는 글을 다시 쓰게 되었는지

다른 글에서 또 마저 소개해 보겠습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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