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평등과 자유를 기도했다.
달아날 수 없는 계층과 신분을 파괴하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축복도 없었다.
태어남과 일상의 훈련과 두려움 없는 순종과 복종
신은 기대하고 고난을 준비한다.
고난은 곧 부르심이었다.
나는 신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침묵의 목소리.
당신께 보답하는 순종의 순간까지
침묵의 눈은 내게 머문다.
지금까지 나는 그녀가 겪었던 고통 중 한 가지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내게 내려진 고통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 잘못도 없이 나는 당하고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매 순간 불신이 쌓이고 불만은 더욱 거세진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은 성장하지 못한 상태이다. 시시때때로 나는 귀찮은 내 문젯거리들을 대할 때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쓰고 바닥에 주저앉고 괴성을 질러가면서 불안함을 처리하고 있다. 정작 해결은 하지 못하고 외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인 셈이다. 나는 억울하고 운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좀 더 기름진 땅이 주어졌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만 같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늘 빼앗기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생기게 될까 봐 걱정스럽고 빈 손이 될까 봐 겁이 나고 실수해서 칭찬받지 못할까 봐 긴장한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내가 그녀 앞에 선 이유다.
나는 척추가 부러진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보다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녀에게 쉴 새 없이 닥쳐왔던 잔인한 삶의 파편들을 부숴버리는 예술가적 심장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삶의 적을 용납하지 않는 전사로 살았다. 그녀에게 무기는 오로지 예술가의 신분과 재능과 열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그것은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낼만큼 선명했을 것이다. 그녀는 삶의 주인으로 선택과 수용을 외면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예술적 감각을 보고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고난의 삶에서 사용했던 인내와 절제를 내 삶에 직접 등장시켜 볼 생각이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무기는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다. 그 견고함이 내 삶을 후퇴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나는 나아가게 될 것이고 내가 원하는 뜻과 생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오늘 내 삶의 길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