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부터 가자
20241025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자는 동안에도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머리가 찌뿌둥했다.
몸이 말도 안 되게 무겁다. 누가 나를 짓누르는듯한 느낌이 든다. 손을 뻗을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눈을 떴다. 주말에도 새벽 기상을 하던 내가 암막커튼 사이로 빛이 환하게 들어올 때까지 누워있다니 이런 내가 낯설었다. 코로나증상처럼 몸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 힘이 없었고, 전 날 과하게 먹은 빵들은 횡격막 쪽에서 걸린 듯 통증이 느껴졌다. 속으로 외쳤다. '일어나' , ' 일어나자, 제발'
계속 이렇게 누워있는다고 해서 해결될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나한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작은 행동부터 하나씩 해보자고 마음먹고,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그다음 팔, 그다음 다리. 이불을 걷어차고 나온 다음 이부자리 정리를 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베란다로 향했다. 뽀송뽀송하게 말라있는 옷들을 걷어왔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하나씩 각 맞춰서 깔끔히 갰다. 움직이니까 몸에 조금씩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병원부터 가자.'
내과에 들어선 순간 꼭 더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괜히 무기력해져서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고 더 밝게 인사했다. 과식으로 인한 위통증, 위꼬임증상, 미슥거림.
위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도 음식을 계속 먹고, 체중에 대한 강박 때문에 하루에 운동을 3~4시간 정도 한다고 말했다. 나한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인데, 의사 선생님이 '특이하네요. 좀 과한 것 같아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더 심해지면 폭식증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음식을 5~6번 정도 나눠서 적게 자주 먹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곧바로 정신과를 갔다.
뇌파 검사부터 설문지까지 다양한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받는 동안 자극적인 질문들 사이에서 격해지지 말자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작성하자고 마음먹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글자들이 날린다. 작성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과하지 않고, 적당한 무드를 잡고 질문을 하신다.
감정적 공감이나, 위로는 필요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문제의 근원을 찾아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내 증상에 대해 차분히 얘기했다.
과식인지 폭식인지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계속 먹는 습관, 자려고 누우면 잠드는 데까지 3~4시간 이상 걸리는 것(눈 감고 생각하다가 7시간이 지나 그대로 눈 뜨고 일어나서 출근한 적도 있었다.), 투두리스트에 대한 강박, 운동에 대한 집착, 해야 할 일들을 다 못했을 때의 불안, 이어지는 폭식.. 반복. 반복.
이 생각들이 나쁜 건 아니다. 적당히 필요한 것들이다. 단, 이 생각들이 나를 옥죄고 일상생활에, 정신적으로 지장을 준다는 게 문제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였다. 힘든데도 계속 달리라고 강요했다. 정신력 하나만 있으면 안 될 게 없다고 무식하게 밀어 붙인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반성했다.
우울의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와서 이거부터 먼저 치료하자고 하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의 치료방식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 책 추천도 받았다. 내일 독서모임에 가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