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버그

내 삶의 언어들

by 푸른 노을


내 마음의 버그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 오류가 났다. 버그가 생긴 것이다. 이리저리 만지며 고쳐 보아도 쉽게 오류는 해결되지 않았다. 버그 먹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는데 컴퓨터가 꼭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전원을 켜면 버그가 와 있는 컴퓨터처럼 마음에도 예고 없이 버그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버그는 외로움이다.


잘 돌아가는 컴퓨터에 버그가 생겨 작동이 멈추듯 내 마음에도 외로움이라는 버그가 모든 것을 멈춰 버린다. 햇볕이 창백한 날이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태양마저도 슬픈 얼굴을 감추려 구름 속에 숨어든다고 여기며 마음도 어디론가 숨어들기 위해 주위를 살핀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셔도 가슴을 데울 수가 없다. 마음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고 입안 어딘가에 스며들다 식어 버린다. 외로움이 내 온몸에 바이러스처럼 퍼져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버그가 생기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나 이틀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우울로 보낸다. 마치 자동조절 모드의 비행기처럼 의식의 흐름이 과거와 미래 사이를 제 마음대로 헤집고 끌고 다닌다. 친구에게 전화하려고 해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가 놓아 버린다. 친구가 전화 한 날 바쁘다는 핑계로 다정하게 받아주지 못한 기억에 망설이고, 살기도 빠듯한 또 다른 친구는 배부른 소리라며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망설인다.

내가 전화를 걸 용기를 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 때문이다. 외로움에 습격당한 내 마음이 미세한 반응에도 상처를 입어 유리알처럼 부서질까 봐 두려워하고 그런 내 마음이 상대에게 들켜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나보다 더 잘 난 친구를 보면 주눅 들어 망설이고, 나와 다른 친구를 만나면 무시한다고 할까 망설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나는 나의 마음에 중심을 잃어버리고 외로움이라는 버그 속에 갇혀 버린다.

외로움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빠진다. 화성에서 혼자 살아가는 <마션> 같은 영화나 불우한 환경에서 역경을 극복한 <스타트 업> 같은 성공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속 상상의 스토리를 현실로 반영해 스스로 엔도르핀을 얻고자 한다. 고난을 헤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장면을 보면 저절로 힘이 솟아나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쌓아둔 설거지를 하며 몸을 부린다. 몸이 서서히 활력을 되찾으면 어느새 나의 버그는 치료가 되어 일상으로 되돌아가 있다.

혜민 스님은 마음의 외로움을 털어내는 방법으로 혼자만의 시간 갖기를 추천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다 보면 마음의 심연에 닿게 되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를 바라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로부터 잠시 떨어져 있거나 남의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속도에 맞추어 가다 보면 마음의 평화도 저절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조금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외로움도 고독도 마음의 평화로 변해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한다.

정신 분석학자 임진수 교수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상실을 경험한다고 한다. 상실로 인한 외로움과 애도는 개인이건 인류학적이건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데 충분한 애도를 거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멜랑콜리(우울증)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외로움이 멜랑콜리로 진화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긍정적인 애도가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제 때때로 일어나는 나의 외로움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나 자신을 충분히 애도하면 내 마음도 다시 회복되지 않을까. 버그 먹은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마음도 초기화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다리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별일 없지? 그냥 했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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