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기 100억 프로젝트
집이 없었다. 사업장건물에 얹혀사는 신세였다. 사업장과 붙어있다 보니 퇴근을 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고 늘 업무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자주 악몽을 꾸었다. 긴장이 풀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이들도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자랐으니 안락한 집이 왜 그립지 않았겠는가. 우리 집은 언제 생기냐며 집에 대한 애착을 키워 나갔다. 아이들은 우리 집이 소원이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다.
아무리 사업장이 우선이라 하더라도 마음 편히 쉴 집 한 채 없이 여태껏 견디다니. 나 또한 재테크나 일이 우선인 나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업장을 우선으로 하고 재테크가 목적인 나는 꼭 돈을 우선시하지는 않았다. 그냥 일을 하다 보니 사업장을 확장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늘 돈은 부족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많은 돈을 깔고 사는 것이 아깝기는 했었다. 이사를 자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사를 핑계삼기도 하고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아 굳이 비싼 집에 살 이유가 있겠냐며 스스로 집의 소중함을 외면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투자를 하며 사업장을 확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집에 안주하고 싶었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집을 갖고 싶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그때부터 우리 집 갖기로 정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얼마의 돈이 모였을까?
시어머니의 생신날이었다. 팔순잔치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경기도 구리에서 전세로 살고 계셨는데 주인이 월세로 전환한다며 나가달라고 했단다. 팔순잔치의 기쁨도 잠시 어머니의 한숨이 늘어지셨다. 남편 또한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팔순 잔치가 끝난 저녁 남편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어머님 집을 사 드리자."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님이 월세방에 사시는데 내가 우리 집에서 사는 것 또한 마음 편치 않은 일이라 여기며 어머님 집을 먼저 사기로 했다. 남편에게 어머님 집부터 먼저 사고 그다음에 우리 집을 사면 된다며 일단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엄청 고마워했다. 결국 우리는 일주일 만에 경기도 구리에 어머님 아파트를 샀다. 어머님은 무척 기뻐하셨고 아들이 사 준 집 이라며 경로당에 자랑하셨다. 그리고는 몇 해 더 행복하게 사시다 얼마 전 별이 되셨다.
나는 다시 돈을 모아야 했지만 어머님께 효도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후 어머님집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우리 집을 사게 되었다. 아직도 대출이자를 매달 갚아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나는 따뜻하고 포근한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어머님 아파트는 이제 지하철 역세권으로 변했다. 강남역을 잇는 지하철 공사 중이다. 부동산 침채 기를 맞아 가격이 하향조정되었다지만 그래도 처음 구입 때보다는 시세가 많이 올랐다. 나는 효도도 하고 재테크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