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분투기
녹내장 정기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다.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하는 검사인데 녹내장 환자에게는 무척 중요한 검사이다. 검사결과에 따라 병의 진행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치료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안약을 바꾸거나 수술등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작년 이맘때쯤 정기검사에서는 검사결과가 좋지 않아 레이저 시술을 권했었다. 기존의 안약으로 조절이 되지 않자 의사 선생님은 레이저 시술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 후 나는 레이저 시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안약도 변경하고 경과를 보았는데 안약 부작용이 있어 원래의 안약으로 되돌아왔다. 이번 검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치료방법이 또다시 결정된다. 이번에도 결과가 안 좋다면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 며칠 전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이날만을 기다렸다.
녹내장 수술은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수술이 아니라 안압을 낮추는 수술에 불과하다. 안약으로 조절되지 않는 안압을 수술로 낮추는 것이 수술의 목적이며, 수술 후 몇 년이 흐른 뒤 또다시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처음부터 수술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수술을 한다고 해서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수술을 권하지 않는 것이다. 수술은 녹내장 환자에게 최후의 수단 인 셈이다.
예약시간이 오후 2시이어서 오전에는 직장에서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 농장 체험을 갔는데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힐링하는 시간을 보냈다. 농장 주변을 푸른 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진달래와 벚꽃이 진 자리에는 푸른 잎들이 무성했으며 초록과 연두의 향연들로 나무가 싱그러웠다. 비닐하우스 안에도 로즈메리와 허브향이 가득해서 농장체험동안에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기분이었다. 비 온 뒤라 미세먼지도 없고 공기도 신선해 눈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휴대폰을 만지는 일상과는 사뭇 다른 날을 보낸 탓일까. 병원에서 안압을 쟀는데 모처럼 낮게 나왔다. 여태 병원에서 잰 안압 중에서 가장 낮게 나왔던 것이다. 평상시 14로 유지되었던 안압이 11이 나와서 의사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레이저 시술 후 첫 번째 안압 체크 시 11이 한 번 나왔었고 그 후 14로 다시 되돌아갔었다. 목표 안압을 11로 설정했으나 11이 된 적은 없었다. 시술 후 한 달 뒤 다시 재었을 때도 안압은 14로 되돌아가 있었다. 레이저 시술도 효과가 없구나라고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오늘 11이 나온 것은 시술 덕분인지 푸른 숲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도 의사 선생님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컴퓨터나 휴대폰 사용이 눈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나오니 의아했다. 다음에 진료받을 때도 컴퓨터 사용을 자제해 눈을 편하게 해 주고 안압 검사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기실에 앉아 있자 검사실에서 이름을 불렀다. 먼저 숟가락 같은 기구로 눈을 가리고 시력검사를 했다. 왼쪽이 0.9가 나왔다. 오른쪽은 평소대로 교정시력이 1.0이 나왔는데 왼쪽이 다소 나빠진 듯했다. 다음으로 난시, 원시 검사를 했다. 난시가 조금 있긴 했으나 간호사가 원시라고 했다. 시야검사를 하기 전 렌즈의 도수를 알아야 하니 정확하게 시력을 재는 것 같았다. 안경의 도수도 측정했다. 풍선 모양의 그림을 보며 초점을 맞추는 검사가 난시, 근시, 원시인지를 알아보는 검사인데 굴절의 정도를 알아보는 검사이다. 상이 맺히는 위치에 따라 근시와 원시가 판가름된다고 한다. 나는 원시의 눈으로 멀리 있는 것은 잘 보는 반면에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간호사가 시신경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초록색의 불빛을 보고 있으면 위에서 아래로 선 같은 것이 내려와서 사진을 찍는다. 초록색불을 옆으로 이동시키며 눈의 사진을 찍는데 아마도 다양한 시신경모양을 찍기 위함 인 듯했다. 처음에는 사진 찍는 순간을 못 참아 눈을 깜빡여 다시 찍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사진 찍을 때까지 깜빡이지 않고 참을 수 있다. 경험이 가져다준 혜택이다. 또 다른 검사실에서는 시신경 유두검사를 했다. 무슨 검사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시신경유두검사라고 했다. 매번 받는 검사지만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록색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호사가 사진을 찍는다. 시신경유두검사는 시신경을 보는데 중요한 검사라고 한다.
녹내장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검사는 시야검사이다. 작년에는 여자간호사가 검사를 하였는데 이번 검사는 남자간호사가 주도했다. 종종 남자 간호사를 볼 수 있다.
시야검사는 양쪽눈을 10분씩 검사하는데 오늘은 5분 정도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데이터가 있어 내가 못 보는 구간만 하는 약식 검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에 믿고 맡겼다. 검사 장비가 두 대가 있는데 그전에 검사한 장비와는 다른 듯했다.
시야검사는 한쪽 눈을 가린 채 중앙 불빛을 응시하다가 주변에 불빛이 나오면 버튼을 누르면 된다. 불빛은 희미한 것도 있고 밝은 것도 있다. 방향을 바꿔 가며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여러 차례 검사를 받다 보니 빛이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순발력이 생겼다. 처음에는 불빛을 누르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려 눌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아 다시 검사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한 번만에 검사를 마친다. 처음에는 상상의 불빛이 보이곤 했는데 이것 또한 많이 좋아졌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검사결과도 좋게 나오고 눈이 편안한 날은 흐릿한 불빛도 잘 보인다. 검사 당일에는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오늘도 컨디션이 좋은지 한 번만에 검사를 마쳤다.
시야검사를 하면서 버튼을 누르다 보면 어느 정도 볼 수 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오랫동안 검사를 받아왔으니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위를 어림짐작으로 유추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멀리 있는 불빛이 보여 왠지 눈이 더 좋아진 기분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자 차례가 되었는지 간호사가 부른다. 진료실 문을 열자 담당 의사가 인사를 한다. 늘 반갑게 인사를 해 주어 기분이 좋다. 녹내장 환자는 오랜 기간 병원을 다니게 되기 때문에 의사와도 친하게 된다.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검진을 하고 처방을 받는다. 검사 결과를 보더니 선생님의 표정이 다소 밝아진다. 진행 속도가 거의 멈춘 듯하다며 말한다. 녹내장 환자에게서 '진행이 멈춘다'는 것은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검사결과가 나쁘면 수술을 하자고 했는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하루 눈을 편안하게 하고 검사를 해서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일까. 초록색을 많이 보고 허브향을 많이 들이킨 탓일까. 몸도 마음도 맑아진 기분이다. 저번 검사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아 안약을 바꿨었는데, 안약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안약을 바꿀 때마다 부작용 때문에 고생이 심했었다.
안약은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얼마 전부터 개봉일을 약병에 적어두고 있다. 가끔은 약병이 헷갈려 한 달이 지난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버리고 새로운 약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약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도 안압을 낮추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