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세연 Oct 19. 2022

10. 오늘 아침에 생각나서

#시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궁금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11년 차 며느리

#10-1. 시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전하는 이야기 

           

엄마,

밖에서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걸 보니 이제는 시원해지려나 봐요.

오늘 아침은 조금 쌀쌀하기까지 한 날씨야.


나는 여름이 싫어.

추우면 옷 하나 더 껴입으면 되고 불 좀 더 넣으면 되니까.

뜨거운 태양을 보면 고생만 하다 이 세상 떠난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해.

태양처럼 큰 존재이지만 태양의 온도만큼이나 힘든 삶을 산 우리 엄마.


하늘나라 가서 만나면 봄과 같은 미소로 가을과 같은 손짓으로 맞이해 줄게.     


엄마,

정말 보고 싶다.

오늘처럼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날엔

아버지 환갑 때 찍은 엄마 사진을 꺼내. 


그 때는 몰랐는데,

엄마 얼굴은 늘 부어 있었어.

힘들었지?


이제야 엄마 인생 이해해서 미안해.     

엄마,


오늘도 엄마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고 올게.

잘 있어.                





#10-2.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전하는 이야기 


어머님, 여름, 태양이란 단어를 보니, 저 결혼하기 전에 모항해수욕장에서 정현오빠랑 놀고 있는데, 저녁에 어머님, 아버님 삼겹살 사서 놀러 오셨었잖아요.     


“오늘 재밌게 잘 놀았어요? 배고프지요? 우리, 얼른 밥 먹어요!”


저 보시자 마자 친자식 보살피듯 물어보시고, 손잡아 주시고, 불판에 삼겹살 올리고 어머니가 가게에서 가져오신 상추랑 각종 야채 씻어 저녁 챙겨주셨었잖아요.      


어머님 두 번째로 뵙는 거여서 긴장 많이 했었는데, 얼마나 편하게 풀어주시던지 상추에 깻잎 올리고, 고기 두점, 고추, 마늘 한 조각을 쌈장에 콕 찍어 큼지막하게 싸서 입보다 더 큰 쌈을 우걱우걱 신나게 먹던 기억이 나요.      


식사가 끝나고 바닷 속으로 퇴근하는 해가 펼쳐 놓은 붉은 하늘보며 어머니랑 저랑 둘이 걷던 기억이 떠올라요.      


“ 어머님은 좋으시겠어요. 바닷가가 이렇게 가까우니 자주 오실 수 있잖아요.”

“ 아이코, 나도 여기 몇 십년만에 와봤어요. 가게가 바빠서 여기 올 시간이 없어요.”

“ 어머, 어머님,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요. 어떻게 그래요? 이제부터는 저랑 여기 바닷가도 자주 오고 여행도 자주 다녀요.”     


그 때, 저는 정말 자주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0분거리에 있는 바닷가를.   

결혼하고 11년이 흐르도록 정말 단 한번도 함께 바닷가에 오질 못했어요.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요. 우리 어머님, 바닷가는 커녕 허리, 무릎, 부정맥 수술하고 치료하러 대학병원만 주구장창 다녔네요.     


우리 어머님, 여행지에서 찍어드린 사진 한 장이 없네요. 


가게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예요.      


어머님, 이제부터 저랑 가까운 곳으로 조금씩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봐요.

어머님과 함께 숨 쉬고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지금을 누려보아요.      


함께.       

이전 10화 09.돈 주고도 못 하는 경험이잖아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