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세연 Oct 17. 2022

08.노을과 계급장

#시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궁금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11년 차 며느리

#8-1. 시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전하는 이야기 

        

엄마, 내 글 좀 읽어 봐.     

어떻게 살아왔을까.

돌아보니 인생길, 벌써 석양길이야.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허무하네.


내 생애 한 점 후회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좋았던 추억만 모아서 노을 바라 봤어.


엄마보다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부족하나마 엄마한테 글도 써 보네.     


내 몸에 훈장들이 새겨졌어.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파.

맨소래담 발랐어.

그런데 관절 마디가 튀어 나왔어.

내 인생 계급장이지.


엄마,

세상사는 게 쉽고도 어려운 것 같아. 

사람이라면 이렇게 그렇게 살다 가는 건가 봐.     


엄마랑 노을 바라보면서,

튀어 나온 서로의 관절 이야기 하면서, 그리 살고 싶다는 마음이야.


엄마도 그렇지?     

엄마, 잘 있어.           

 



#8-2.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전하는 이야기 


“세연아, 요즘 손이랑 다리가 자꾸 붓는데, 사람들이 손 맛사지기랑 족욕기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

“아, 그래요? 어머님?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세연아.”

“아니예요. 제가 미리 못 챙겨드려서 더 죄송해요. 어머님,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이 마흔이 넘은 아들, 며느리에게 베풀어 주시고도 모자라 더 베풀어 줄 게 뭐 없나 항상 고민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우리 어머님.


정작 자신의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실 때는 한참을 고민하시고서야 겨우 말씀하시지요. 


저는 어머님께서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시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요. 왠지 어머니가 저를 믿어주시는 기분이 들거든요.      


몇 년전, 깜짝선물로 안마의자를 사드렸을 때 어머님께서 ‘이런 건 쓸데없이 비싸고 자리만 차지하는데 뭐더러 샀냐~’ 라고 하시곤 잠시 후 안마 받다 곤히 잠드신 모습 보고 정말 기뻤었었어요. 


얼마 가지 않아 허리 수술, 무릎 수술, 부정맥 수술을 하셔서 이제 못 하신다고 하셔서 마음이 참 아팠는데 인터넷으로 손 마사지기, 족욕기를 보내드리고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 대신 우리 어머님 옆에서 손, 발 주물러 드리면 참 좋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죽 아프셨으면 말씀하셨을까 싶어 마음이 참 무거웠어요.     


얼마 후, 부안에 내려가 어머님 손을 슬쩍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엄지 손가락엔 지문이 아니라 쪽파 다듬을 때 칼로 꾹꾹 눌러 생긴 칼자국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발 뒤꿈치는 어지간한 가뭄에 갈라진 논 저리가라 쩍쩍 갈라진 척박한 땅 같았지요. .     


“어머님, 너무 아프셨겠어요. 어째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계셨어요.”

“바셀린 바르면 금방 낫는데, 뭣이라고 말을 하냐” 하시고는 껄껄 웃으셨지요.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슬프던지요. 그 때야 비로소 마사지기 딸랑 보내놓고 다행이란 생각이나 하고 있던 제가 얼마나 멍청하게 느껴지던지요.      


“세연아, 내 손, 발이 이래도 애들 건강히 잘 커서 이쁜 며느리들까지 얻고, 더 바라는 거 없다.”


온 종일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해 창백하리 만큼 투명한 우리 어머님의 살결에 밝은 미소가 이 날 따라 더 짠하게 다가왔어요.      


어머님, 진짜 바라는 거 없이 사실 수 있도록 제가 더 잘할게요. 


건강하셔요. 오래.오래.


[사진출처: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