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on Oct 22. 2023

[9층]

열흘의 계단 - 제5화

성당 안이다. 어느 노부인의 영정이 맨 앞에 있다. 정중앙에 놓인 관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제복을 입은 군인은 그녀의 아들인 것 같다. 찬송이 끝나고 신부가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나자, 중년의 군인은 어머니의 영정을 향해 경례를 붙인다. 어깨에는 별 3개가 반짝이고 있다. 아, 아이가 자라 장군이 되었구나. 오른뺨의 가느다란 흉터가 바로 그 흉터다. 아까 7층에서 보았던 중학생 남자아이가 이렇게 훌쩍 자랐구나.


그렇구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노인, 이 남자, 5층에서 편지를 쓰고 있던 그 남자다.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던 그 남자, 맞다.


죽은 할머니의 영정을 들여다본다. 역시나, 3층에서 내가 목숨을 살렸던 그 여자다.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가 트럭과 충돌할 뻔했던 그 여자가 이 할머니다. 영정 옆 위패에 적힌 이름은 윤지선.


3층에서 만났던 미모의 여자, 5층에서 만났던 휠체어의 남자, 둘은 부부였다. 그리고 7층에서 봤던 그 남자아이가 그 둘의 아들인 것이다.


여기 9층에 이르기까지, 잠깐잠깐의 이야기로 세 사람을 스쳐오면서, 시간은 어느덧 한 생명의 마지막까지 흘러온 것이다.

이전 04화 [7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