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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Oct 22. 2023

[7층]

열흘의 계단 - 제4화

다시 오르는 계단. 이번에는 7층이다.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옥상으로 보이는 공간이 펼쳐져 있다.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세 남학생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이는 울고 있다. 구타와 욕설이 계속되고 있다. 남자아이가 바닥에 쓰러진다. 한꺼번에 여섯 개의 발이 아이를 짓밟는다. 발길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도 판단도 필요 없다. <나>의 주먹이 세 녀석의 얼굴과 명치를 강타한다. 셋 다, 보이지 않는 주먹을 피하거나 막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얼이 빠진 세 녀석은 속절없이 유령에게 얻어맞는 수밖에 없다. 세 녀석의 코에서 선혈이 흐른다. 그래도 응징을 멈추지 않는다. 쉬지 않고 내리꽂는 유령의 주먹세례와 발길질에 세 녀석은 혼비백산 상태가 된다. 세 녀석의 귀에 속삭인다. “사과해. 어서 빌어.”


세 녀석이 아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잘못했다고 빈다. 얼떨떨한 표정의 남자아이는 눈만 크게 뜬 채 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세 녀석의 귀에 대고 한 번 더 말한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얘를 건드리면, 너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가 될 거야. 알겠어?”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가해자 셋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에게 사과한다. 아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선하고 예쁘장한 얼굴이다. 오른쪽 뺨에 희미한 흉터가 있다. 뭔가에 베인 가느다란 자국. 하지만 역시, 나는 이 아이를 알지 못한다. 이 아이도 나를 모를 것이다.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의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속삭인다. “걱정하지 마. 다, 모든 게 다, 네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 이제 그 누구에게도 얻어맞거나 괴롭힘 당하지 마. 보이지 않게 너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러니, 용감하게 살아.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눈을 한동안 바라본다. 마음속이 따뜻하고 밝은 빛으로 차오른다. 그리고, 다시 여기 옥상, 아니 7층의 입구로 몸을 옮긴다. 문이 열리고, 문밖으로 발을 내딛자, 탁,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다시 하얀 계단이 눈앞에 펼쳐진다.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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