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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Oct 22. 2023

[6층]

열흘의 계단 - 제7화

5층에서 봤던 그 방이다. 간소하고 단순한 조그만 방 안, 여자의 남편이 휠체어에 앉아 있다. 창밖으로 지는 석양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이 젖어있다.


<나>를 죽인 여자의 남편이 여기 눈앞에 있다. 그녀는 내가 죽이기 직전에 절명했다. 그렇다면 남자라도 대신 죽여야 한다. 금실 좋은 다정한 부부였겠지. 이 남자의 소멸은 그녀에게 견디기 힘든 아픔이겠지.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지금 이 남자는 많아야 40대 중반이다. 백발노인으로 여자가 장례를 맞았으니, 지금 이 남자를 죽인다면, 여자는 생의 절반을 처절한 그리움으로 괴로울 것이리라.


노을을 바라보다 잠들었는지, 남자의 눈이 감겨있다. 흐르던 눈물로 촉촉한 남자의 눈가에 노을빛 한 조각이 서려 있다. 당신에게 유감은 없어. 단지 당신 부인이 날 죽였으니까, 그게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인 거야.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움켜쥐려는데, 어디선가 보았던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모양과 색깔이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남자의 목을 감싸 쥐려던 손을 당겨서, 입고 있는 하얀 윗도리의 옷깃을 여민다. 반으로 쪼개진 하트 문양 은색 목걸이. 남자의 목에 걸린 그것과 같다.


아니다. 같은 게 아니라, 둘로 나뉘어 있는 하나다. 남자의 목에서 목걸이를 빼고 <나>의 목걸이와 맞닿게 합치자 은빛 하트 모양으로 꼭 들어맞는다.


목걸이를 뒤집는다. 뒷면의 글씨를 본다. 박희연♡한은철. 둘을 합치니 가운데 하트를 중심으로 글자들도 완성이 된다.


눈을 감고 잠이 든 남자의 목에 목걸이를 다시 채운다. 그사이 석양은 검은빛에 잠겨가고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파에 올려진 담요를 끌어와 휠체어 위에서 잠든 남자의 무릎을 덮는다. 그때, 푸드덕.


새 한 마리가 열린 창으로 들어오더니, 곱게 접힌 종이를 책상에 떨어뜨리고는 다시 창밖으로 나간다.


그 편지다. 5층에서 바람에 날려갔던 그 편지다. 남자가 쓰던 편지다. 손을 뻗어 잡으려다 결국 놓쳤던 바로 그, 편지를 펼친다.


“이런 날에는 네가 더 보고 싶다. 희연. 그때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걸. 이승이든 저승이든 같이 있고 싶은데... 너는 저편에, 나는 이편에 이렇게 따로 떨어진 오늘이 아프다. 그때 그날 밤, 굳이 운전을 내가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면, 우리 운명은 뒤바뀌었을 텐데. 휠체어 신세가 되더라도 넌 살아남았을 텐데. 내가 조수석에 앉았더라면 죽음은 내게로 왔을 텐데. 지선이와 셋이서 함께 즐거웠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지선이 한없이 고맙지만, 그래서 지선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희연 네가 그립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은 희연이 너니까. 언젠가 만나겠지. 그날까지 희연아...... 희연아, 사랑해.”


툭. 손에서 편지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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