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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Oct 22. 2023

[2층]

열흘의 계단 - 제9화

저녁 식탁이다. 따뜻하고 맛있고 즐겁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 셋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다.


주방에서 조금 떨어진 거실 소파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가 있어야 할 자리다.

아니, <나>가 있었을 수도 있을 자리다.

아니, <나>가 있을 수 없는 자리다.


스파게티를 입에 가져가던 아이가 그만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휠체어에 탄 아빠가 그걸 주우려다 여의치 않자, 엄마가 포크를 줍는다. 아이 엄마가 아이의 입가를 물티슈로 닦아 준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손을 펼친다. 손 안에는 작은 단추가 놓여있다. 조금 전, 2층으로 들어오는 하얀 문 앞에서 받은 거다. <나>에게 단추를 건네며, 고양이는 말했다.


“세 사람의 행복을 박살 내버릴 수 있는 버튼이야. 누르면 주방 천장 환기구에서 황산이 쏟아질 거야. 네가 거쳐온 모든 방의 사연들과 함께, 모두가, 저 세 사람도, 그리고 너도 같이 녹아 사라질 거야. 확실하고 철저한 복수지. 누를지 말지는 네 선택이야. 그런데, 혹시라도 만약에 누르지 않는다면, 아까 계단이 처음 시작됐던 1층, 그 아래에 있는 0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버튼을 누르지 않을 거면, 그냥 소파 구석에 던져 놔. 그럼, 이 버튼은 여자의 지갑에 든 복권 숫자를 당첨 번호로 바꾸게 될 거야.”


누군가 뭔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꺼낸 건지, 세 식구가 일제히 깔깔 웃는다.


황산도, 복수도 그만. 이제 내가 저들에게 끼어들 자리는 없다.


고양이가 건네준 단추를 소파 구석에 던진다.


현관으로 향하자 하얀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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