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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Mar 14. 2024

'수면제와 소주'를 검색하는 그대에게

절대로 멈추지 말아야 할 까닭

자정(子正)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시곗바늘에 찬바람이 스며온다. 창백한 그믐달 아래 맥없이 떨고 있는 벚나무가, 바람에 서걱대는 제 발밑 마른 잎들을 내려보고 있다. 신호를 기다리며 차창 밖 건조한 겨울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양하의 수필 「신록 예찬」이 떠오른다.


쓸쓸함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인가 보다. 겨울의 스산함은 무성한 한여름 푸르름을 향한 동경을 불러온다. 가슴 안으로 번지는 신록에 대한 그리움의 꼬리를 붙드는 생각 하나. 저 앙상한 흩어짐은 결코 끝이 아닐 것이다. 말라 비틀린 나무껍질 속에는 필시 신록이 가만가만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다시 창공을 향해 손을 흔들 푸르른 희망이 새싹을 키우고 있으리라. 끝은 그래서 끝이 아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듯한 절망과 고독은, 펼쳐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래도 다시!’라는 반전(反轉)의 날개를 꼭 품고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멈추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까닭이다.


제풀에 놀란 바람이 재채기라도 한 것인지, 도로변에 쌓인 스티로폼 상자 두 개가 찻길 위로 나동그라진다. 도로 위 느닷없는 장애물들은 드문드문 옅은 가로등의 시야에 미처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은근히 걱정스러워진다. 차에서 내리려는 바로 그 순간, 길가에서 지팡이로 보도블록을 딱딱 두드리며 걷던 느릿느릿 할머니 한 분이 툭,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는다. 차도로 내딛는 불편한 다리가 할머니를 더 힘겹게 해 보인다. 하지만, 물을 얼리고도 남을 밤바람의 싸늘함도 감히 저 할머니의 땀은 얼리지 못할 것 같다. 어렵사리 스티로폼 상자 두 개를 인도 구석으로 옮겨 치운 할머니는 다시 딱딱 지팡이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작아진다.


아무도 모른 채 지나치더라도, 별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삶의 어떤 몸짓은 아름답게 묵직한 파동(波動)이 된다. 하마터면 가로등만이 목격했을 할머니의 자그마한 선행은, 어쩌면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놀라서 브레이크 대신 핸들을 조작할 뻔했을 졸린 트럭 기사의 생명을 연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은, 계속이든 중단이든, 누군가에게 혹은 세상에 파동을 던진다. 가족을 빼고라도, 그 대상은 스스로가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하게 많다. 오랜만의 방문을 반색 없이 속으로만 반기는 단골 순댓국집 아줌마든, 가끔 챙겨주는 먹이를 고대하는 길고양이든, 아침마다 주인이 창문 너머로 뿌려주는 물에 세수를 즐기는 화초든, 심지어 매일 묻히던 손때가 숫제 정(情)으로 물들어버린 현관문 손잡이까지. 어떤 이와 어떤 것들은 누군가의 평범한 삶이 건네는 작지만 선한 파동에서 그 존재를 이어갈 기운을 얻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삶의 파동들이 모여 세상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저 홀로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그 파동은 공짜가 아니다. 한 삶을 생겨나고 자라게 한 이 세상을 향해서는, 누구나 빚을 지고 있다. 삶의 몸짓이 펼치는 선한 영향은, 결국 무수한 주고받음의 교차이며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삶은 스스로 멈춰져서는 안 된다. 삶은 권리이자 의무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중단된 삶은 저 홀로만의 끝에 그치지 않는다. 그 중단의 파동은 남겨진 이들에게 치유 불가능한 깊고 진한 상처로 영원히 남는다.


그 어떤 삶의 중단도 아프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어떤 삶도 아름답지 않은 삶은 없다. 생명이란 그 어떤 조건도 단서도 없이 그 자체로, 신록보다 더 예찬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 어떤 경우라도, 삶은 포기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다.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이 말하듯, “부서지면 부서진 대로,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잠깐의 짧은 생각이 마음속으로 접힐 때, 살포시 졸음에 잠기려던 겨울 밤바람을 깨우듯 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새 자정을 건너뛴 시곗바늘이 내일을 오늘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오늘’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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