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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Apr 01. 2024

'나'를 버려야 앞으로 나아간다.

1단 기어를 넣는 순간의 몰입과 용기

#1. 몰입(沒入)을 배운커피 한 잔


  방송사 여기자(記者)인 선배와의 점심 후 커피 한 잔. 의욕적인 취재, 열성적인 보도. 넓디넓은 취재 권역을 종일 누비는 데다 회사와 집도 꽤 먼 거리라서, 만날 때마다 ‘참 힘드시겠구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언론인이다. 커피 향 속, 이런저런 얘기들 중에 미처 몰랐던 선배의 이중생활(?)을 듣게 되었다. 적잖은 나이와 강도 높은 취재 생활을 딛고 서서, 지금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단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늘 다짐만 금메달일 뿐, 실천은 예선 탈락인 마흔다섯 게으른 회사원은 그 여선배의 늦깎이 열정이 부러우면서 참 감탄스러웠다.     


  그런데 진짜 강렬했던 이야기는, 회사원 겸 대학원생인 선배가 들려준 이 경험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지. 몇 시간 동안 논문을 펼쳐 읽으면, 내가 그 논문 속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게 되거든. 그렇게 흠뻑 빠져 논문 활자 속을 헤엄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다시 ‘나’를 논문에서 건져내어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여기가 어디지? 잠깐 내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지.”     


  아. 이 사람은 진정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이르렀구나. 문자 그대로, 마음이 한 곳으로 온통 쏠려 자신의 존재를 잊는 경지를 드나들고 있구나. 아예 활자의 바닷속으로 자신을 던진다는 것. ‘읽음’의 주체와 객체가 완벽히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 아니 문아일체(文我一體)를 득도(得道)한 그 선배의 생생한 체험 묘사는 놀라운 감동이었다.     


  그제야, 바쁜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의 틈새에서 이 선배가 없는 시간을 쪼개 만들어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수긍에 이르렀다. 몰입(沒入)이란 시간의 발목을 붙잡는 힘을 생기게 한다. 무서운 집중력은 강한 중력과 마찬가지. 강한 중력은 시공간을 휘게 하여 시간을 더 느리게 흐르도록 한다는 상대성이론은 우주공간 블랙홀만이 아닌 어느 도서관 좌석에서도 현실이 되는 것. 몰입과 집중은 그래서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이는 타임머신인 것이다.     


  커피 한 잔은 다 같은 커피 한 잔이 아니다. 그 선배와의 그날, 봄날 점심시간의 커피 한 잔은 더욱 각별했다. 그날 마신 커피가 유독 더 많은 카페인을 담고 있지는 않았을 터. 선배와의 대화는 게으른 얼치기 작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새벽 기상+매일 글쓰기’라는 나름의 소소한 실천을 향한 의지를 다시 새롭게 가다듬어 주신 선배에게 진심 감사를 드린다.     


#2. 용기(勇氣)를 말한영화들 속 장면 셋     


  PC통신과 삐삐.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90년대 풍경과 감성이 물씬 피어나는 영화 ‘접속’. 이 영화에는 줄거리의 흐름에서 다소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왜 그 장면을 감독이 살려두었는지가 이해되지만, 주된 줄거리의 전개에서는 굳이 없어도 그만인 그 대목은 전철 안이 배경이다. 두 주인공 한석규와 전도연이 또(!) 우연히도 전철의 같은 칸을 타고 있었을 때, 갑자기 승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손민석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렇게 더듬더듬, 그렇지만 큰소리로 말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OOO라고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제 말 더듬을 고치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습니다. 그녀에게 ‘용기’ 있게 고백하기 위해서, 제 말 더듬을 꼭 고치려 합니다... (중략) 감사합니다!”     


  영화의 큰 줄기와는 좀 동떨어진 이 장면이 어렴풋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얼마 안 되는 인생영화들 목록 중에서, ‘용기’라는 단어의 색인(索引)을 열다 보면 꼭 그 장면이 기억난다. 전철 안 청년의 최종 목적지는 ‘사랑’이지만, 그 목적지를 향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말 더듬이었고, 말 더듬을 고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용기’였던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도, 전철 안에서 생면부지 낯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은 아주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더군다나 말 더듬이 심한 그 청년에게는 정말 상상도 못 할 크기의 용기가 샘솟아야만 가능했었을 일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부디 그 청년이 용기 있게 고백에 성공하여 사랑의 결실을 맞았기를...     


  용기란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공포와 주저(躊躇)를 벗어던지고, 그동안 두려웠던 그 무엇을 향해 맨몸을 던지는 것이랄까.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은둔 고수 백윤식은 동네북 재희에게 일갈(一喝)한다. “네 안에 있는 두려움! 두려움! 그걸 깨부숴야 해!” 전도연이 건달 보스 박신양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싸움을 잘할 수 있어요?” “즐겨야죠.” “아! 때리는걸요?” 박신양이 답한다. “아뇨! 줘 터지는 걸 즐겨야죠.” (영화 ‘약속’ 중에서) 맞는 걸 즐기는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얻어맞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지. 그리고 두들겨 맞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해 용기란, 곧 실패를 겁내지 않는다는 것.


#3. 몰입(沒入)과 용기(勇氣), 나를 버리는 것한걸음 내딛는 것     


  몰입(沒入)과 용기(勇氣)의 같은 점은, ‘나를 버린다는 것’이다. 논문 속 활자에 담긴 사상(思想)의 바다에 풍덩 자신을 내던진 선배는,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잊고 버렸기’ 때문에 문아일체(文我一體) 몰입(沒入)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 더듬 청년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동네북이던 재희가 학교 일진 대장을 박살 내버릴 수 있었던 것도, 두려움과 주저함을 던져버리면서 ‘스스로를 놓아버린’ 바로 그 순간에 폭발한 용기(勇氣)의 힘이었으니.     


  그럼으로써 인간은 한걸음 내딛게 되는 것이다. 자전거의 페달도 처음 밟을 때에 가장 큰 힘이 실려야 하듯, 수동변속기 1단 기어를 넣는 순간에 엔진 소리가 제일 크듯, 멈춰있던 무엇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온 힘을 모아 쏟아야 한다. 정지의 관성(慣性)을 깨뜨리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고 함은, 기존의 ‘나’를 버리면서 몰입과 용기를 작동시키는 것. 그리하여 삶은 한 발짝씩 세상 속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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