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따라 80년대생도 퇴사했습니다.

게으른 인간의 직장생활 7

by 모구리

지점에 90년대생, 20대 중반의 신입행원이 들어왔다. 신입행원이 들어오고부터 나는 직무이동으로 좀 더 업무량이 많은 곳으로 이동을 했다. 이전부터 친한 동료들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것을 농담처럼 입에 달고 살았고 일에 질리고 치이고 있었다. 내 속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팔랑귀가 작동하여 직무를 이동했다.


일에 관한 재미를 느끼고 열정이 있었다면 직무이동을 한 것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속 외침을 뒤로하고 익숙한 업무를 포기하며 그저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움직였다.


반면 신입행원은 은행창구일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좋은 선배들이 많아 자신들도 바쁜 와중에 신입행원이 도움을 요청하면 나서서 업무를 도와주었다. 가끔 지점문이 닫히고 저녁시간에 간식거리가 배달되면 신입행원은 가장 먼저 달려가 수저세팅까지 하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은걸... 요즘에는 신입도 저렇게 까지 안 해도 되는데...'


신입행원은 그 뒤로도 씩씩하게 웃으며 일을 잘 해내어 3개월의 수습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은행원이 되었다.


한 달 뒤 신입행원이 온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제주도 일정을 다 잡아 놓았는데 가기 전 주말, 독감에 걸렸다. 격리기간이 끝났어도 몸이 아작 난 듯한 느낌이었다. 독감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제주도를 가서 힘없이 있다가 돌아왔다. 몸이 아프니 요즘에 심해진 무기력도 극심하게 찾아왔다. 제주도를 다녀와 3일 남은 휴가기간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지점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한데 지금 새로 하는 일 그대로 자리만 좀 바꿔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네 알겠습니다."


"자리만 바꾸는 거니까~ 월요일 아침에 자리정리 바로 했으면 좋겠어. 피곤할 텐데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끊었다. 지금 배우는 일도 겨우 4개월 차에 실수투성이. 10년 차 행원이 자존심을 굽혀가며 옆 과장님께 붙어 전담코치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이일도 겨우겨우 적응 중인데 자리를 옮기라는 건 내 일과 함께 그 자리 부서의 업무도 새롭게 맡게 될 수 있는 거였다. 뭐 그래도 알아서 흘러가겠지라고 생각한 순간 다른 상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휴가인데 전화해서 미안. 우리 쪽으로 오게 됐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같이 잘해보자. 그런데 말이야 우리 신입이가 그만둔데."


"뭐라고요? 잘 다닐 것 같았는데 아쉽네요."


"어 다른 계획이 있나 봐."


신입행원이 그만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남은 휴가기간 내내 그동안 애써 무시했던 나의 마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모두가 반대해서 용기 있게 그만둘 수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 출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휴가 마지막날 그냥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제주도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줄 초콜릿도 집에 두고 출근을 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잘 해냈던 일도 갑자기 해낼 자신이 없었다. 무시하고 이 악물고 버티려고 했지만 더 이상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호르몬도 작동을 멈춘 느낌. 번아웃이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하루아침에 퇴사를 통보하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보름 뒤 퇴사날짜가 확정이 되었고, 후련한 마음으로 신입행원과 대화를 했다.


"신입이랑 내가 같이 그만두게 될 줄이야. 요즘은 신입행원이 수습기간에 안 잘리려고 하는 게 아니고 본인이 회사를 평가하는 기간이라며?"


"헤헤."


"어렵게 들어왔는데 4개월 만에 퇴사한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반대 안 하셔?"


"네. 그냥 응원해 주셨어요."


"좋겠다. 나는 10년 동안 다녀서 아까운지 주변에서 다 말렸어. 솔직히 응원은 둘째치고 이해라도 해줬으면 좋겠었는데."


"선배님, 저는 선배님의 퇴사를 응원합니다. 축하드려요."


"고마워. 난 그동안 참고 다녔었는데 신입이의 용기를 보고 내가 배웠어."


그렇게 90년생 신입을 따라 80년대생 아줌마도 함께 퇴사를 했다. 신입행원은 몇 개월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니다가 그 후론 멕시코의 지인 회사에서 일손을 도와줄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실컷 게으름도 피워보고 육아를 하고 글을 쓰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