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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Jan 03. 2021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내게는 8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딸 부잣집에 막내 남동생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가난한 농촌에서의 귀한 대접은 언감생심 꿈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 초는 민주화 바람으로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던 시기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에 꽂혀 용돈을 그곳에 탕진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 개교기념일이어서 학교가 쉬자 친구들과 집 근처에 있는 광주호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막내 동생을 만났다.

  반가움도 잠시

  “야. 너 왜 여기에 있어? 학교에 있어야지.”

  “응, 누나, 오늘 학교에서 이곳으로 소풍 왔는데.”

  주위에 조그만 꼬맹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동생의 소풍에 호주머니 탈탈 털어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 옆에 있던 친구들 것까지 사주고 사진 몇 장 찍고 잘 놀다 오라고 하고 돌아왔다.

  그날, 늦은 저녁 시간에 집에서 녀석을 보았을 때는 입가에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얼굴 밑에 쓰다만 일기장이 보여서 치우려다 읽어보았다. 내용을 읽다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쓸쓸한 소풍이 될 뻔했는데 넷째 누나를 만나 겁나게 기분 좋은 소풍을 보냈다. 엄마가 김밥은커녕 용돈도 안 줬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누나가 나타나 친구들한테까지 하드를 사줘서 허벌나게 좋았다.”

  그 글에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낱말 ‘겁나게’와 ‘허벌나게’라는 전라도 방언이 얼마나 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는지 모른다. ‘쓸쓸한 소풍’이라는 말에 눈물이 쏙 나왔다가 ‘겁나게’와 ‘허벌나게’라는 낱말에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내가 쓰던 말인데 그 말이 그리도 좋은 말인 것을 동생의 일기를 통해 진하게 알았다.

  고향집 앨범에 빛바랜 그날의 사진이 지금도 있다. 막내 동생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닳아 헤진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웃고 있는 모습. 단발머리와 어울리지 않은 밤색 치마를 입고 엉성하게 동생 어깨를 감싸고 미안해하는 표정의 나지만 겁나게, 허벌나게 다정한 막내 동생과의 추억 한 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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