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2학기 시작 전에 인천에 새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했다.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아파트지.
2학년에 올라가서 반장 선거에 나갔다. 그때 너는 내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참 귀여웠다.
내 눈에만 귀여운 게 아니었던가 봐. 은●라는 여자애가 널 무척 좋아했지.
결국 너는 반장, 그 아이는 부반장을 맡아 너희들 덕분에 엄마들끼리도 친해졌고 학교에 들락날락했다.
편지를 보아하니 화이트데이에 사탕과 편지를 주었던가 보다.
지금 보니 웃음이 난다. 내가 그 아이를 썩 좋아하지 않은 생각도 난다. 그 어린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아무튼 그 여자아이의 부모가 싫었고 그 아이의 생김새도 별로였다. (여기서 미안하다. 그때 내가 왜 인물을 따졌는지) 아빠가 빈둥대며 화가랍시고 엄마를 생활전선에 나서게 해서 싫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엄마는 부평 어디에서 야간 족발집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정말 웃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너도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느 날 가느다란 금색 실 반지를 끼고 왔더라.
뭐냐고 물으니 은●가 줬다며 네가 그 반지를 무척 소중히 여기더란 말이지. 그것까지야 봐 줄만 했다. 어느 날 학습지를 풀게 하고 잠깐 집안일을 하는 사이 너는 거실 책상에 앉아 그 반지를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더라.
그러잖아도 조그만 게 연애질인가 싶어 화가 나던 참인데 하라는 공부는 않고 반지에 혼을 놓고 있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그 반지를 빼앗아 확 집어던졌다. 울며 반지를 찾고 난리였지.
나중에 나도 미안함에 그 반지를 찾아보았다. 이상하게 안 보이더라.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네가 고등학생 때 이곳으로 이사 오는 날 휴가를 낸 네 아빠에게 짐을 뺄 때 반지를 찾아보라고 했는데 장롱 밑에는 동전만 있었다고 하더라. 나는 직장에 매여 이사하는 날도 새 집으로만 잠깐 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 그 집에서 잘 찾아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하하~ 이렇게 세월이 지났고 네가 다른 여친들한테 빠져 살아도 나는 왜 그 반지가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린 너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그날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또 며칠 동안 계속 찾았지만 장롱 밑으로 들어갔는지 없더란 말이지. 사실 장롱은 안방이라 별 상관도 없었지만 튕겨 나갔을지도 몰라 찾아보았지.
내가 그 아이를 더 싫어한 이유는 그 아이 엄마한테 들은 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집에 와서 두 손을 번쩍 들고 행복해하더란다. 아마 반지를 서로 주고받은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의 여자다."
하더란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못마땅한 거지.
아들아, 그땐 엄마도 어렸나 봐. 그만한 것을 이해 못하고 말이야.
가끔 너의 연애사가 생각이 난다. 내가 언젠가 이 말을 했지?
네가 결혼할 여자 데려오면
"어, 그 애가 아니냐?"
할 거라고. 그래서 널 아주 난처하게 만들 거라고.
내가 시집간 몇 해 후에 네 아빠 대학 다닐 때 자취방에 안경 끼고 노란 단발머리 한 여학생이 왔다고 네 할머니가 말씀하시더라.
"그게 너 아니었냐?"
하던 할머니 말씀에 난 기함했다. 네 아빠 자취방 근처에 가본 역사가 없는데 말이야. 집에 와서 그 여자와 어떤 사이냐고. 둘이 뭐 했냐고 한동안 네 아빠를 괴롭혔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