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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Jan 05. 2021

얼음낚시

 모처럼 갖는 휴일 오후, 작은아들이 어떻게 노는지 뒤를 밟기로 하고 도망치듯 달아나는 녀석을 따라갔다. 우리 아파트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에 건너는 아들을 놓치고 말았다. 집에서 늦게 출발한 큰아들과 합세하여 다른 쪽의 횡단보도를 향해 빠른 걸음을 걷노라니 녀석이 보인다. ◯◯◯◯◯역을 가로질러 우리를 따돌렸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아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뛰어봐야 벼룩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다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작은아들을 미행하다 두 번째 건너야 하는 신호에서 대기하다 그만 걸렸다.

  “하하~ 오지 마!  형과 엄마는 다른 데로 산책이나 가셔 ”

  “아니야. 너 어떻게 노는지 한 번 따라가 볼게.”

  “싫다고!  그럼 PC방에나 가야지.”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아파트 상가에 있는 PC방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훅 끼쳤다. 넓은 공간에 다닥다닥 컴퓨터의 큰 화면이 펼쳐져 있고 빈자리 없이 사내 녀석들이 차지하고 있다. 보아하니 초등학생이 주를 이루고 중고생이나 대학생, 또는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의자부터 편안하게 보였고 시설은 최신식으로 깨끗해 보였다. 그런 곳에서 밤늦도록 다 큰 작은녀석이 노는구나 싶어 한심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결국 그 녀석은 빈자리가 마땅찮은지 카페에 가서 영화를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도 미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옆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평소에는 남편과 자전거를 타고 간 공원인데 오늘은 아들과 걸어가다 주위를 둘러보다 멀리 강 얼음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우리도 강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일명 V자 다리 아래의 얼음 위에 간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세 명의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음 구멍을 다섯 군데 뚫어 놓고 그곳에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서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가 잡히나요?”

  갑자기 다가가서 묻는 나에게 코까지 덮은 목도리를 조금 내리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저기 붕어 몇 마리 잡았어요.”

  “그럼 구경해도 되나요?”

  묻는 나에게 별 관심 없이 그러라고 고갯짓을 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있다는 곳에 가보니 얼음을 살짝 파고 웅덩이를 만들어 잡은 물고기를 넣어 두었다. 크고 작은 물고기 네 마리 정도가 좁은 공간에 퍼덕이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거 요리로 해 먹나요?”

  관심을 보이니

  “그냥 재미로 잡지요. 아는 사람 주려고요.”

  나는 더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어떻게 얼음 구멍을 냈어요?”

  하고 물으니 옆에 물건을 가리킨다. 내 키 높이만 한 쇠 자루가 보인다. 끝은 뾰족해서 얼음을 파내기에 적합해 보였다. 그 도구를 이용하여 내 가운뎃손가락 길이만큼의 얼음 두께에 구멍을 내고 낚시를 하나 싶었다. 그곳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으로 주위 환경이 그리 깨끗하지 않아 사실 고기를 낚는다 해도 먹을 수 없어 보였다. 물 역시 맑지 않고 공장 폐수처럼 연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두 마리의 새가 얼음 위에서 뭔가 쪼아 먹으려고 하자 아저씨 한 분이 손을 휘둘러 새를 쫓았다. 궁금하여 그곳으로 가니 좀 커다란 양태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근처에는 하얀색의 새똥도 흩어져 있었다. 아마 새가 고기를 물어가다 아저씨의 쫒음으로 놓고 도망을 간 것 같다. 얼음물 웅덩이에서 멀어진 양태는 물도 없는 차가운 얼음 바닥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고 주위는 빨간 피가 여기저기 물들어 있어 나는 아저씨 몰래 발로 물고기를 밀어 물웅덩이에 넣어 주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물을 먹고 고통이 덜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전부터 낚시질을 했다던 아저씨들은 여기저기에 얼음 구멍을 뚫어 낚시를 했던지 돌아보니 주위가 온통 얼음 구멍이다. 그런데 그곳이 추위로 살얼음이 되어있고 또 햇빛을 받아 물이 조금 투명하게 보이자 작은 물고기인지 새우인지 모를 아주 작은 생물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몸을 숙여 살펴보니 살얼음에 얼어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그것들을 관찰하고 있는데 낚시를 하던 세 명의 아저씨들이 갑자기 일어서서 주섬주섬 낚시 도구를 챙겨 얼음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한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얼른 나가요. 오랫동안 그렇게 있으면 이제 얼음이 깨져요.”

그제야 무서운 생각이 든다. 따사로운 햇살로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우지직 깨지고 우리는 그곳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가 엄습해왔다. 서둘러 강가로 나가는데 그 사람들이 챙겨나간 자리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얼음에서 파닥이고 있는 게 보였는지 큰아들이

   “엄마, 잠깐 여기 좀 보고 나가요.”

  나오던 발길을 돌려 다시 가보니 검지 길이의 물고기 한 마리가 물도 없는 얼음 위에 버려져 있었다. 나는

  “우리 이 물고기 살려 주자.”

하며 발로 살살 밀어서 아까 낚싯대를 드리웠던 얼음 구멍으로 살며시 밀어 넣어 주었다.

  “아우, 불쌍한 물고기야. 이제 절대 잡히지 말고 잘 살아라.”

  구멍 속으로 쓸려 들어간 물고기는 이내 퍼덕이며 자유로운 몸짓을 하고 달아났다. 그나마 기분이 좋았다. 한 마리라도 살려 줄 수 있어서. 그런데 낚시꾼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겠다. 어린 물고기는 버리지 말고 다시 물속으로 넣어 살려 줄 것이지 그냥 버려두고 가면 어쩌라고?  참 나쁘다고 아들에게 말하니

  “어쩜 새 들 먹으라고 놓고 간 것은 아닐까요?”

한다. 사려 깊은 아들 생각처럼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새들도 배가 고파 인간이 잡아놓은 물고기에 침을 흘렸던 것이 떠올라 새의 밥으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난 그래도 물고기를 원래 있던 물속으로 돌려보내 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에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휴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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