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동생과 늘 다투는 기세 좋은 나를 할머니는 억세다는 이유로 마뜩잖아하셨다. 아들이 귀한 집이라서 남동생은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하늘하늘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연약한 바로 위의 언니는 병약하여 할머니로부터 집중 관심을 받았다. 넷째 손녀인 나는 형제자매와 자주 싸우는 바람에 얄미워하였다. 또 남동생이 먹어야 하는 간식을 갖은 사탕발림으로 꿰어 빼앗아 먹는다고 사랑도, 동정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정을 몹시 그리워하였다. 할머니한테 사랑을 받는 형제들이 무척 부러웠다.
할머니 머리맡에는 대나무로 만든 사각형의 석작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거나 고모들이 사다 주신 통조림, 알사탕, 산자, 강정, 약과, 다식이 한가득 들어있었으며 가끔 사과나 배도 있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석작에서 할머니는 밥을 안 먹고 까탈을 부리는 언니나 남동생에게는 자주 한 가지씩 먹을 것을 주었다. 밥이든 뭐든 잘 먹는 나는 거의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 늘 근처에서 입맛을 다시며 호시탐탐 몰래 먹을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특히 황도가 들어있는 통조림은 어떤 맛일지 몹시 궁금했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면서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것은 할머니의 죽음에 관하여 선생님께 한 거짓말이 진실이 된 사연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70년대 초, 가난한 농가에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딸 넷, 아들 둘이 오순도순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 초여름이었다. 평소 건강하셨던 78세의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으셨다. 하지만 모내기 철이라 부모님도 특별히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
“농번기에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던디 너희들 중 한 두 명만이라도 오늘 조퇴하고 와서 모내기 헐때 돕도록 혀라. 알것냐?”
호랑이 같은 아버지 말씀에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예. 알것써라우.”
학교에 간 나는 2교시가 끝나자 고민에 빠졌다.
‘선상님께 뭐시라고 말허고 조퇴한다냐? 모내기혀서 조퇴한다고 허면 안 해줄건디 환장허겄네.’
그렇게 조퇴할 이유를 찾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니
‘응, 그려. 고러코럼 말허면 아마 선상님도 조퇴해줄 것이고만. 참말로 잘 생각혀 부렀네.’
번뜩 그 생각에 미치자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담임선생님 앞에 나가서
“저기 선상님, 오늘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조퇴를 해야 쓰것는디요.”
놀란 선생님은
“아! 그려. 그람 빨리 가봐야제. 싸게싸게 가방 챙겨서 집에 가거라잉.”
선생님이 그토록 쉽게 허락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도 왠지 찔리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것은 멀쩡히 살아계시는 할머니를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내일이면 탄로 날 거짓말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어린 내가 그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에라 모르것다. 혼나더라도 내일 혼나지 뭐!’
5학년인 언니 교실에 가서
“쩌기, 우리 언니, 집에 빨리 가야 허는디요!”
두 명만 오라는 아버지 말을 잊고 1학년인 남동생까지 챙겨서 집에 도착하고 보니 할머니는 이른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그런데 다른 날과는 조금 눈빛이 이상했다. 아버지께서는 뭔가 예감을 하셨던지 모내기를 내일로 미루고 작은 언니를 시켜 이웃 면에 살고 계시는 고모를 모셔오라고 하였다.
낮잠을 주무시고 일어난 할머니는 어머니와 언니들을 향해
“이것들이 나는 밥도 안 주고 지들만 처먹네그랴.”
전에 없이 역정을 내셨다. 학교에서 조퇴하고 왔을 때 분명히 이른 점심을 드시는 걸 보았는데 억지를 부리는 할머니가 다른 날에 비해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큰언니와 나는 마을 위쪽에 있는 밭에 가서 반찬으로 쓸 연한 열무를 솎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집에 무척 가고 싶었다.
“언니! 고만 집에 가불자 잉.”
“그러게. 나도 빨리 가봐야쓰겄다. 오늘은 왠지.”
서둘러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엉∼ 엉 엉.”
큰 소리로 서럽게 우는 셋째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년, 또 뭔 잘못을 했길래 혼났다냐?”
우려하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열어놓은 방문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움직이며 누워계신 할머니의 몸을 흔들고 계셨다.
“엄니! 엄니! 정신 차려보쇼잉.”
해가 뉘엿뉘엿 산마루로 넘어갈 때 할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모와 작은 언니가 오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마지막 숨을 몇 번 더 토하였다.
애끓는 아버지의 외침을 뒤로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다.
참으로 안타까운 할머니의 죽음이었지만 나는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선생님께 한 거짓말이 진실이 되었으니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또 할머니한테는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드리게 하려고 가장 아끼는 바로 위의 언니와 1학년인 남동생까지 내가 알아서 조퇴를 시켜 데려왔으니 효도한 셈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선상님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혀서 진짜로 돌아가신 게 아닐까?’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할머니가 평소 예뻐해 주지 않은 이 손녀에게, 학교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베푼,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라는 위안을 마음으로 삼아야 편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유품을 정리했다. 석작에 남아있던 통조림을 따서 먹는데 철없던 나는
‘요로코롬 맛있는 거를 언니와 동생에게만 줬구만잉. 참말로 할머니 너무 했네.’
통조림 속 황도를 먹으며 서럽게 울었다. 왜 할머니는 나만 예뻐해 주지 않았는지? 아니 돌아가시면서 한 통을 남겨 놓은 것은 그나마 내게도 그 맛을 알려주려고 그러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토록 맛있는 것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에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 석작 속에 있던 다른 맛있는 간식이 뭐라고! 그리 서운했는지? 지금도 통조림 속에 든 노란 황도의 맛을 볼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마 할머니도 내심으로는 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고 그날 나를 위해 돌아가셨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쩜 선생님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더 오래 사셨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죄책감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