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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Dec 30. 2020

콧물 빠뜨린 라면


 <라면 단상>


  "우와, 오늘따라 우리 엄마가 아주 예뻐 보이네요!"


평소에는 무뚝뚝해서 아부할 줄 모르는 아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먹고 싶으면 호들갑을 떱니다.


  "이 녀석, 인스턴트식품이 몸에 안 좋다는 것, 잘 알잖아."


  "에이, 착한 엄마가 왜 그러실까 끓여주세요. "


애교까지 부려가면서 '착한 엄마'라고 조르니 한발 물러선 저는 가스레인지 위에 솥을 얹고 물을 끓입니다. 그리고 저의 사춘기 시절에 있었던 친정어머니와의 일을 떠올립니다.


  "와, 웬 라면이야?  배고픈데 끓여먹어야지."


학교에 다녀온 저는 광 속에서 발견한 라면 한 봉지가 금은보화라도 되는 양 소중하여 꼭 끌어안습니다. 이런 저를 본 어머니는


  "이리 내 놔!  우리 큰아들 줄랑게."


찬물을 끼얹는 어머니 말씀에 어린 제 가슴은 멍이 듭니다. 아무리 딸 부잣집의 귀한 아들이라지만 아직 학교에서 오지도 않은 두 살 터울의 남동생 몫을 챙겨 놓으려는 어머니가 무지 밉습니다.


  "엄니, 그럼 나는 뭐냐고?"


앙칼지게 따지는 저에게 어머니는 '쓸모없는 가시내'라고 합니다. 얼마나 서럽던지. 먹고 싶은 라면도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이라는 동생에게 빼앗겨야 하는 편애 속에 커야 했습니다.


  "난 이다음에 크면 엄마처럼 안 할겨.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잘하는 착한 엄마가 될겨."


가슴속에 그렇게 꼭꼭 다짐을 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이 말하는 '착한 엄마'라는 소리에 기가 죽어 라면을 끓이는 것입니다. 결코 모진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초등학생 때, 여덟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과 있었던 장면이 흑백 사진처럼 펼쳐집니다.


  "누나, 우리 이마 맞대고 누가 라면 많이 먹나 내기하자."


볕 좋은 날 오후, 마루에 앉아 일 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끓인 라면을 꼬마 동생이 먹으며 제안을 합니다.


  "좋아, 그 대신 누나가 많이 먹어도 울지 않기다."


커다란 냄비에 물이 훌렁훌렁인 라면을 담아놓고 동생과 제가 이마를 맞대고 연신 먹어댑니다. 그 모양이 절로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훗' 저의 웃음에 동생도 한입 가득 라면을 물고 웃습니다. 다시 웃음을 참고 욕심을 내어 더 많은 라면을 입에 넣다가 참지 못한 웃음과 범벅이 된 동생은 그만 누런 코 한 덩이를 '퍽' 라면 국물에 빠뜨립니다.


  "푸 하하하 하하하!"


이마를 떼고 한바탕 큰 소리로 웃습니다. 동생도 깔깔댑니다.


  "이거 너 혼자 다 먹어라."


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코가 빠진 라면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음이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생과 즐거운 추억을 만든 셈입니다.  가난한 시절에 먹는 라면은 쌀밥보다 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가끔 어머니의 편애로 슬플 때도 있었지만 요즘에 먹는 라면 맛에 비하면 그때의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어쩜 꿀보다 더 맛난 음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가난이 준 맛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잘 사는 지금은 배가 고파서 먹는 라면이라도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이유인가 봅니다. 아련한 기억 저편을 다녀오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후루루 쩝쩝, 호로록 꿀꺽!  역시  엄마가 끓인 라면이 최고예요."


중학생 아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속 보이는 칭찬을 하지만 그래도 싫지 않아 얼굴이 붉어집니다.  언제 아부를 했던가 싶게 빈 그릇만 남겨 놓고 휑하니 제 방으로 들어간 아들 녀석이 얄밉지만 그릇들을 깨끗이 씻습니다. 귀하게 얻은 아들 사랑에 멍든 딸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야속한 감정도 이제는 말끔히 닦아냅니다. 지금은 라면이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닙니다. 소금 함량이 많고 비만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자주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이 된 게 꼭 저와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미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자라더니 이제 스스로 컸다고 생각하는지 어미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늘 잔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어미를 부담스러워합니다. 한때는 저도 누군가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라면 같았는데 이제는 배척의 대상이 되니 슬플 뿐입니다. 그래도 가끔 라면이 먹고 싶으면 아들이 아부를 하니 다행입니다. 아직은 라면이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저는 아직도 가난한 날의 만찬인 라면 같은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맛있는 라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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