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6일 MBC 여성 시대에 방송된 글>
신학기라 신입 원아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어서 교사들은 힘들다. 기존부터 잘 다
니던 네 살 채은이가 혼자 잘 놀아서
“우와! 우리 채은이는 엄마 안 계셔도 잘 노네.”
칭찬해 주니 발음까지 정확하게
“나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 말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조그만 게 뭐 엄마가 필요 없다고? 다음 날, 평소에 씩씩하던 채은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선생님, 나 엄마가 필요해.”
‘하하 필요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필요하다고? '
“어머, 우리 채은이 이제 엄마가 필요하구나. 그런데 왜 필요해?”
“나도 친구들처럼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엄마 빨리 오시라고 전화할게.”
그리 말하는 채은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마 친구들이 엄마를 찾고 울어서 채은이도 엄마가 보고 싶었나 보다.
같은 반 솔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올 때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울며 발버둥을 친다. 그날은 울지 않고 오더니
“선새님(선생님),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솔이 마니 울었어, 근데 이제 안 울어.”
그 말에 빵 터졌다. 아마 옛날이야기를 평소에 많이 들어서 말을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시아는 빨간색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해서 낮잠 시간에 손에 꼭 쥐어야만 잔다. 그런데 자려고 할 때마다 우는소리를 내며 반말로
“히잉 ~ 빨간 차 줘!”
“시아야, 울지 말고 예쁘게 '빨간 차 주세요' 해 봐. 그렇게 말하면 줄게.”
한참을 실랑이하다 다른 아이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정확한 발
음으로
“선생님, 빨간 차 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얼른 빨간 차를 대령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 갑자기 예은이가
“선생님이 좋아요.”
“하하 그래, 나도 예은이 좋아!”
입에 밥을 잔뜩 물고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평소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하원 하는 율이는 가끔 슬픔을 눈에 매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날도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가고 율이와 서너 명만 남아 저녁 간식을 먹는데 뜬금없이 내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아들 있어요?”
뭐라고 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잠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들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사적인 내용을 잘 말하지 않는 나는 진지하게 묻는 율에게 말해줄지 말지를 재고 있을 때 다시 율이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집에 가면 아들도 있고, (오빠인데 부모가 아들이라고 한 것을 자기 아들로 오해하여 말하는 듯싶다.) 오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하며 손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다. 아무런 표정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그것을 손바닥으로 찍어내듯 닦아내는 율이가 어찌나 슬퍼 보이는지 갑자기 나까지 슬퍼지며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겨우 네 살이지만, 아마 직장에 가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부모 생각에 그러는 것 같다. 나까지 눈물이 핑 돈다.
통합 보육으로 여섯 살이 된 서우가 제일 먼저 등원하기로 되어있어 기다리는데 어린이집 밖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린다.
“엄마, 안아 줘!”
패악질을 하는 목소리에 벌써 머리가 지끈 아프다. 얼른 뛰어나가 맞이하는데 엄마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으며 뺨이라도 때릴 기세로
“썅!”
떼놓고 달아난다. 그러자 서우는 현관 앞에서 드러누워 엄마 안아 달라며 발버둥을 친다. 그럴 때면 당황스럽다. 아니 자주 있는 일이라서 놀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달래 본다.
“서우야. 선생님이 안아 줄게. 그리고 말했잖아, 엄마가 바쁘시니 아침에는 엄마 말씀을 잘 들으라고. 그렇지만 엄마도 나쁘다. 그치? 한 번 안아주면 될 것을. 선생님이 엄마 혼내줄까?”
겨우 달래 교실로 데려오니 이미 바지가 오줌으로 젖어 있다. 따뜻한 물로 씻겨 옷을 갈아입히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세상 살기가 다 힘들어. 엄마도, 너도 말이야. 하다못해 선생님도. 그렇지만 용기를 내고 살아야지. 네가 사랑받으려면 참고, 잘 견디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야 해. 어차피 부모가 있어도 없어도 나중에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야 하거든”
어린 서우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어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는 말을 해본다. 말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결손가정인 서우가 엄마 품에서 잘 커가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