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주 동안 같은 멤버인 친구들과 걷기 운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시흥갯골생태공원에 가기로 했다. 멀리 서울과 수원에서 오는 친구들을 오이도역에서 만나 남편의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서울에서 온 친구는 역시 배가 고프다며 징징거려 차 안에서 내가 가져간 군산의 이성당 빵을 간식으로 내놓으니 맛있다며 커피와 먹는다. 우리도 옆에서 단팥빵과 야채빵을 율무차와 함께 먹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성당 빵 이야기를 하며 맛있다고 하는데도 나는 여전히 별로라며 내 개인 취향에 고집을 부려 말했다.
수원 친구가
"쟤는 지가 한 것만 맛있대."
콕 찌르는 한마디에 모두 맞는다고 웃었다.
두 개의 캐릭터에 마스크를 씌워 놓았는데 하나는 벗겨져 있어 남편이 다시 씌워봤지만 잘 안 되어 말았다.
"내 생각에는 하얀 마스크는 노란 캐릭터가 쓰고 노란 마스크는 하얀 캐릭터가 쓰면 더 튀어 보였을 텐데."
아쉬움을 남기고 걷다 보니 이곳에 처음 온 수원 친구는 좋다는 말을 하며 비명을 지른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봄인 5월과 10월에 와야 좋다지만 내 생각에는 어느 계절에 와도 그 나름으로 좋은 곳이다.
소금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연대별로 잘 설명되어 있다. 토판, 옹기판, 타일판 등 1955년 이전 염전의 결정 지역(소금판)은 현재처럼 타일이 깔려있지 않은 토판으로 갯벌이 섞여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한다.
1955년 ~1980년대 초까지는 항아리나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만들어 깨끗한 소금을 모으기에 편리했단다.
다음으로 19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는 타일 판으로 표면이 매끄러워 소금 채취가 더 쉽고 검은색 타일은 태양열 흡수가 빨라 염도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소금 놀이터에는 맨발로 들어가서 소금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겨울철에는 동파 위험으로 물을 제공하지 않아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나무로 만든 6층 흔들 전망대는 바람이 부니까 더 심하게 요동친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전체 모습이 참 멋지다. 억새밭의 황토색 물결이 예쁘고 구불구불 길이 뱀처럼 조화를 부리고 있어 멋있다. 만조로 갯골에는 물이 많아 청둥오리가 짝을 지어 둥둥 떠다니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들을 보고 서울 사는 친구가
"와, 부럽다."
하자 수원 사는 친구와 내가
"부럽긴. 쟤네들도 저러면서 싸우고 사는 거야."
깔깔 웃었다. 탐조대를 지나가다가 저어새 이야기를 하니 서울 친구가
"저어새는 어떻게 생겼어?"
묻자 수원 사는 친구가 갑자기 양팔을 저으면서
"저어서 저어새야."
한다. 또 웃었다.
빈폴 옷의 상표처럼 생긴 자전거 모양 다리가 보인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본다. 늙은 모습이 싫다 하는 친구에게 세월이 지나 지금의 사진을 보면
"어, 이때는 참 젊었네 할걸."
하니 모두 맞는다고 맞장구를 친다.
체온 측정을 하고 갯골습지센터에 들어갔다. 내 체온은 32.6도라고 했다. 남편의 체온이 38도를 넘어 체온계 고장임을 알았다.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조금 기다렸더니 그 체온계가 이제 남편의 체온을 너무 낮게 나타내서 어이없었다. 현미경으로 나문재, 해당화, 퉁퉁마디 씨앗과 약쑥과 갈대, 칠면초 마디를 볼 수 있게 해 놓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농게, 밤게, 칠게 등도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해 놓았다. 거기에서 저어새 사진을 발견하여 친구에게 보여주니 웃는다. 주둥이가 한 팔 길이는 되겠다며.
중간에 화장실이 급하다는 서울 친구를 구박했다. 커피에 칡즙에 양파즙에 사과, 귤을 먹었으니 그렇다며.
다행히 소금창고 쪽에 화장실이 있어 볼일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주차장 쪽으로 나오니 하늘 높이 연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공원 측에서 전봇대에 묶어 날리는 연이 있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가져온 연들도 높이 날기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이 높이 날았다. 비록 하늘이 맑지 않고 흐렸지만 화려한 연의 춤사위가 내 마음까지 빼앗아 간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서울 친구의 선택으로 정왕역 근처에서 부대찌개를 시켜 먹는데 맛있다. 우리는 오후 4시 넘어 점심 겸 저녁을 먹는데 그 시간이면 식당에 손님이 없어 코로나로부터 조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