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인천에서 출발하고 친구 한 명은 수원에서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서울 명일동에서 출발하여 성남 서현역에서 10시 30분에 만났다. 남편이 운전을 하여 도착한 곳은 성남 분당에 있는 율동 공원 B 주차장.
집에서 가져간 포항 과메기를 차 안에서 먹었다. 사실 나는 과메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려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먹는데 김과 미역 등에 고추, 마늘을 넣어 초고추장에 찍은 과메기를 또 배춧잎에 싸 먹는데 먹을만했다. 아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마 그것은 고향의 친구들을 만나서 먹으니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호수는 꽁꽁 얼어있었지만 번지점프를 하는 곳에 가니 호숫가에는 물이 얼지 않아 청둥오리들이 가족회의를 하는지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다. 위쪽으로 걸어가니 조각 공원이 나오고 '산바람 강바람'의 작곡가 박태환 노래비가 있다. '숲 속의 합창단'이라는 조각품을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 사용한 작은북, 멜로디언, 나팔이 보인다. 꼭 우리 시골 아이 세 명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촌스러우면서 정겨워 웃음이 나왔다.
조각품을 감상하고 옆쪽으로 가니 책 테마파크가 나온다. 책의 역사가 그려진 벽이 있어 산책하듯 이야기를 나누며 빙글빙글 돌아 걸었다. 한쪽 벽에 숨어있다 걸어오는 친구 두 명을 깜짝 놀라게 해 주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아래로 내려와 열 체크 등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다. 예전에 가족과 함께 온 곳이지만 다시 가니 새롭다. 책과 함께 체험공간도 있어 좋은 곳이다. 책을 주제로 산책코스가 있으며 미술 전시가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곳이다. 신간 코너도 있고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어 좋지만 우리는 휘리릭 한 바퀴 둘러보고 산으로 향했다.
영장산 오르는 길에 영지버섯을 발견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사실 참나무에 붙어있는 버섯이긴 했지만 진짜 영지버섯인지는 모르겠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다만 인터넷으로 검색한 사진과 비슷해 보였다. 서울 사는 친구가 시장에 가져가서 물어본다 하여 캐 주긴 했지만 독버섯이 많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 말해줬다. 가다 보니 조그만 굴 앞에 도토리가 즐비하다. 다람쥐 굴이라고 친구가 말했지만 어째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숨기고 또 어디에 숨겼는지 몰라 봄에는 그 도토리가 새싹을 틔우므로 그렇게 한 곳에 모아 놓을 리는 없어서다. 지금쯤은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정상 부근에 도착하니 돌탑이 있고 꼭대기에서 힘차게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가 반갑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초록의 이끼가 싱그럽다. 아기 잣나무도 귀엽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자연의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날씨는 봄 같다. 따사롭고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날이다. 입고 간 겨울 잠바가 무겁게 느껴지고 땀이 나서 벗기를 여러 번.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어느 사이엔가 바람이 차가워 옷깃을 여미기도 했다. 멀리 곡선의 산 모양이 부드러운 엄마 품속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걸어 다리가 아프다고 할 즈음 성남 3.1 운동 기념공원이 나온다. 태재고개로 내려오니 처음 산으로 올라갔던 곳 근처다. 과메기를 먹었다지만 배가 고파 우렁이 쌈밥을 먹으려다 국물이 먹고 싶다 하여 부대찌개를 파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밥 양이 적은 친구를 생각하여 삼인 분을 시키고 화장실에 다녀와 친구들 몰래 계산하려고 주인에게 살며시 다가가 카드를 내미니
"어떤 여자분이 계산하셨어요."
한다. 아이고 수원 사는 친구가 먹지도 않은 밥값을 잽싸게 냈나 보다.
계란말이도 일품이지만 라면 사리를 넣어 끓인 부대찌개 맛이 엄청 좋았다.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 그 음식점의 음식 맛은 아주 깔끔하다고 칭찬을 하며 먹었다. 마지막까지 먹던 남편 입속에서 갑자기 '빠드득' 소리가 들려 돌 씹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나올 때 주인에게 조용히 다가가 돌 씹혔다고 말해주자는 친구들에게 3인분 먹어서 미안하고 맛있었으니 아무 말하지 말자고 내 주장을 내세웠다.
호수 쪽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보여 막 내려서는데 어느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서 아이를 안아 남편이 먼저 내려간다. 아내는 유모차에 있던 가방을 등에 메고 가벼워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내려간다. 난 속으로
'어, 이상하다. 유모차를 버리고 가려나?'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친구들과 남편은 한발 한발 내디디며 다리가 아프다고 고통의 비명을 지를 때 나는 그들 부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먼저 내려간 남편은 안고 간 아이를 내려놓고 뒤 이어 도착한 아내의 손에 아이 손을 쥐여준다. 성큼성큼 계단을 다시 올라가 유모차를 번쩍 들고 내려온다.
"에구, 저 여자가 들어도 되겠더구먼 어쩜 저리 남편을 부려먹을까?"
속엣말을 하니 친구가 옆에서
"그러게 요즘 남자들은 돈 벌어다 주고 또 아내나 아이에게 저리 해야 해서 불쌍해."
한다. 물론 여자가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내가 아들만 키우는 엄마 입장이라서인지 미래에 우리 아들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만약 딸 가진 엄마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