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35분 정도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려 의왕국민체육센터에 주차했다. 뿌연 미세먼지로 답답하지만 계원예술대학교 근처 공원으로 걸어 산으로 올랐다.
모락산 둘레길이다. 오르다 뿌리가 뽑혀 누워있는 나무가 길가에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올라 걸었는지 그 흔적이 보였다. 나도 가만 지나 칠리가 없다. 하여 나무 위를 뒤뚱뒤뚱 걸어보았다. 나무 끝 부분으로 다가 갈수록 흔들림이 느껴지고 땅과 거리가 멀어지니 오금이 저렸다. 스릴이 있어 즐거웠다. 꼬드겨 남편도 걷게 하고 사진을 찍어줬다.
생각보다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중간에 의자에 앉아 가져온 과일을 먹노라니 젊은 부부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산에 오르고 있다. 3, 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리 앞에서
"아이고~ 나 이제 더 이상 못 가~"
하며 힘들어하는데 웃음이 나온다. 조그만 녀석이 어른들이나 하는 말을 해서.
부모의 채근으로 저 멀리 산에 오르는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모락산은 생각보다 바위가 많다. 해발 355m인데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인 세조의 경계를 피해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은 이곳 모락산에 은신했다고 전한다. 임영대군이 '한양을 사모하던 산'이라 하여 모락산이라 불렀다 한다.
오르는 길에 세 명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우리 앞에 간다. 그녀들은 화장품 회사에 서류를 넣었다며 중소기업에라도 취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고 있다. 들으려 하지 않았는데 들린다. 조금 걱정스럽다. 젊은이들의 취준생 이야기에 가만 귀를 기울이며 산에 오른다. 그녀들의 하얀 운동화가 질퍽거리는 흙으로 범벅이 된다. 초콜릿이라며 하하 호호 웃으며 걷는 발걸음에 그나마 기분이 좋다.
사람만이 바위를 타는 것이 아니라 나무도 바위를 타는지 알림판에 친절하게 바위 타는 나무라고 쓰여있다.
조금 더 오르니 모락산 국기봉에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등짝이 뜨겁다. 잠깐 바위에 앉아 어디로 내려갈 것인지 인터넷으로 찾고 있는 사이 따가운 햇살이 마구 내리쬐는 바람에 응달을 찾아 앉아야 했다.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
내려오는 길에 가는잎그늘사초를 누군가 머리처럼 곱게 땋아 놓았다. 웃음이 난다. 참 할 일도 없었던가 보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산이나 들에서 가는잎그늘사초를 만나면 앉아서 땋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 여자 아이들의 머리를 잘 땋는 것도 그때 사초로 머리 땋는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 하하~
가끔 내가 여자 아이들의 머리를 잘 땋는 것을 보고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 어떻게 그렇게 머리를 예쁘게 잘 땋느냐고 묻는 이가 많다. 나는 일명 디스코 머리 땋기에 대가다. 하하~
막내딸이라 여동생도 없고 결혼하여 딸도 없는데 여자 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여러 가지로 예쁘게 잘 만지는 것은 분명 사초 덕이다. <겨울왕국> 영화에 나오는 안나나 엘사의 머리로 땋아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나는 늘 바쁘다.
우리가 산에서 다 내려올 때쯤 세 명의 아가씨들이 다시 우리 앞에서 걷는다. 그녀들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이야기를 한다. 아기였을 때 해리포터를 보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 아이들보다는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보리밥을 먹으러 간다며 갈미 한글공원 근처 보리밥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남편은 인터넷으로 보리밥 가격을 알아보더니
"9000원이나 하는데 부모가 준 용돈으로 사 먹나 보네."
하여
"아이고, 우리 아들들도 우리가 준 돈으로 대학 다닐 때 더나 맛나고 좋은 것 사 먹었을 거야. 당신도 대학 다닐 때 한 달 용돈으로 3만 원 받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당구 치러 다녀서 단무지에 밥 먹었다며?"
갈미 한글공원으로 향한다. 갈미(길이 갈라지다)가 교통의 요충지로 한글학자 이희승 박사가 의왕 출생이라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공원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글공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데 한글을 형상화한 조형물 몇 개가 고작이라 실망스러웠다. 한글공원이라고 하여 내 딴에는 뭔가 근사란 한글로 표현된 것들이 즐비할 줄 알았는데 잔디밭과 공연장, 화장실 있는 것이 다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아쉬움을 안고 주차장으로 향하다 분식집에서 순대, 떡볶이, 튀김을 14000원어치 사 먹었다. 세트메뉴에 분명히 쿨피스가 있는데 주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으니 냉장고에서 내가 원하는 맛으로 한 통을 꺼내 먹으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한 통을 준다는 소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들보다 싼 가격으로 배불리 맛있게 먹고 왔다.
사실 남편이 나에게
"우리도 보리밥 먹으러 갈까?"
물었을 때 나는
"아니, 나는 내 돈 주고 절대 보리밥은 안 사 먹어."
말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까만 꽁보리밥에 질려서. 혼식 권장이라고 도시락 검사를 할 때도 나는 부끄러웠다. 흰쌀밥을 싸오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가난해서라기 보다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한다고 쌀을 아끼고 보리쌀이 더 많은 밥을 해 먹는 우리 집이 그때 너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