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각자 몇 번은 다녀와 가보지 않은 곳 위주로 골라 가기로 했다. 어느 곳으로 갈지 의견을 나누었는데 윗세오름에 가자는 쪽에 숫자가 많았다. 그렇게 몇 곳을 찾아 떠났다.
이틀째 되는 날에 등산 복장을 하고 윗세오름으로 향했다. 11월 하순의 날씨는 쌀쌀했다. 초,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우리들은 지나간 이야기, 사는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느라 힘든 줄 모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갔다. 같이 간 친구 중에 학교 다닐 때, 윗집에 살았던 아이가 있었다. 소아마비에 걸려 절룩절룩 걷는 그녀가 산에 오르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산에도 자주 가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하며 의지를 불태워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 윗세오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만 옷을 입고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우리 친구들과의 대화를 방해하기 싫다는 듯 소리마저 내지 않는 까마귀가 그리 사랑스럽긴 처음이었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으며 모두 예쁘다는 말을 한마디씩 했다. 까치는 주변에서 자주 보고 또 길조로 사랑해 주지만 까마귀는 우리와 가깝게 지내지 않고 흉조라 여겨서인지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그날만큼은 예뻤다. 보드랍게 보이는 까만 털마저 윤기 있어 보였다. 가만 다가가 만져도 도망갈 것 같지 않은 거리에서 우리에게 감상할 시간을 주고 있는 그들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조릿대와 고사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보리수가 길 가에 수두룩했다. 이미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따 먹고 씨앗을 뱉어놓은 것이 향수를 자극했다. 우리 친구들 역시 보리수 열매를 한 움큼씩 따 먹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정상으로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었지만 1700M의 높이를 단숨에 올랐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뜨거운 감탄으로 토해내며 해가 질까 봐 서둘러 하산을 했다.
윗세오름의 까마귀
고향 마을 윗집에서 살았던 그녀와 유독 친하게 지냈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리막길을 막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의 한 남자가 친구와 나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헤집고 내려가더니 발길을 뚝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획 돌려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난 속으로
‘뭐지? 친구와 아는 사람인가?’
그녀는 다리 한쪽이 짧아 몸을 앞뒤로 심하게 움직여서 걸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 친구부터 쳐다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좁은 산길에서 우리를 앞서가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숙여 발 디딜 곳을 찾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아는 척을 할 줄 알았는데 한참을 그 사람과 마주 보더니 민망해하며 시선을 다소곳이 내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차, 소아마비로 힘들게 걷는 친구를 궁금해해서 쳐다보는 것이구나, 나쁜 놈!’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입에서 욕을 뱉을 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묵묵히 계속 걷던 길을 걸을 뿐이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남자를 마음속으로 욕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길을 걷다가 몸이 뒤틀려서 걷는 뇌성마비나 화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사람을 무심코 쳐다본 적이 있다. 팔, 다리가 없거나 빨간 점이 온 얼굴에 나 있는 분을 만나면 더 유심히 쳐다보았던 생각이 났다. 그렇다. 나도 그 남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민망할 정도로 바라본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기보다 틀리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우리와 다르다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마다 눈빛의 따가움을 느꼈을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사죄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얼마나 기분 나빠했을까? 상처를 안겨준 것을 그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누구나 겪어보지 않고는 남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는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나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애정 어린 마음까지는 갖지 않더라고 조용히 모른 척하고 자연스럽게 대해 줘야겠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들이 손 내밀 때 도움을 줘도 늦지 않다. 먼저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순간 다 날아가고 예뻤던 까마귀마저 불길한 징조였다는 생각을 했다. 불쾌한 감정이 더 많이 남는 여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노라면 화가 나고 오히려 내 친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려 온다. 평소 내가 각성하지 못한 부분을 깨달은 여행이라 여기며 친구에게 그 남자분을 대신하여 미안함을 마음으로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