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부부가 세배를 하러 왔길래 같이 떡국을 끓여 먹고 연천, 철원 여행에 나섰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인 호로고루다.
임진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는 곳에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쌓아놓은 곳인데 가을에 가면 해바라기 꽃으로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먼저 입구에는 북한에서 남북 사회문화협력 사업의 결과로 광개토왕릉비의 모형을 만들어 가져온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거대하게 비가 서 있다. 짐작건대 봄이나 여름에 가도 초록의 잔디밭이 예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성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는 영화를 촬영했다 한다. 겨울에 가서 그런지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나름 좋다.
다음으로 당포성에 가니 호로고루와 비슷하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이라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옆으로 흐르는 임진강변에는 철새가 한가롭게 놀고 있다. 강물의 윤슬이 아름답다.
점심으로 맛집인 메밀 자장을 하는 음식점에 갔는데 탕수육이 엄청 맛있다. 첫맛에 반하고 말았다. 매콤한 맛이 느껴지고 바삭한 느낌이 여느 탕수육과 완전히 다르다. 또 메밀로 만들었다는 짜장면이 생각보다 더 맛이 있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좋아했다.
연천 허브빌리지는 겨울철이라 입장료가 4000원인데 다른 계절에는 7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온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편은 아니다. 내 개인 소감으로는 오래되어 낡았다는 느낌. 그냥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놓은 느낌이 강했다. 그나마 지상으로 나가니 소원을 비는 거북이 형상인 소원석과 삼층탑, 주상절리가 볼 만했다. 또 천사의 상이 있는 사랑의 연못은 얼어서 그 위에서 얼음 타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허브로 아름다웠을 꽃밭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겨울에도 볼거리를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려오다 흑고니, 백 고니를 보았는데 덕분에 즐거웠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철창 사이로 부리를 내밀어 우리의 손이나 발을 마구 물어뜯었는데 아팠지만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거움을 주어 좋았다. 특히 흑고니의 목이 하트를 만들기도 해서 무척 신기했다.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놀다 왔다.
멀리 임진강변을 바라보던 아들이 군대에서 숙영을 했던 곳이라며 이를 갈았다. 텐트를 칠 때 땅이 꽁꽁 얼어 고생했던 이야기를 한다.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에 잠을 잤다 한다. 세수도 못하고. 쯧쯧 ~ 얼마나 고생했을까?
차로 이동하여 이번에는 미라클 타운, 로하스 파크에 갔다. 옹기가 즐비하다. 예전 익산의 고스락처럼 항아리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가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더니 아무것도 없다 한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장 달이는 냄새가 났는데.
세라비 한옥카페에 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얼른 나와서 한가로운 습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역 고드름이 있다는 팻말이 쓰여있어 가 봤지만 없다. 우리가 원래 목표한 역 고드름이 있다는 곳은 지도상으로도 먼 데. 왜 그런 어이없는 팻말을 붙여놓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역 고드름을 보기 위해서는 차로 한참을 달려갔다. 그곳은 조금 으슬으슬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대산 폐 터널에서 자란 고드름을 보니 신기하다. 위로 자라는 고드름을 역 고드름 또는 승빙이라고 한다. 보통은 위에서 아래로 고드름이 자라는데 이곳은 지면의 얼음이 지하의 물을 빨아올린다는 것이다. 물 분자의 특이한 성질인 삼투압과 열 분자 압력이라니 놀랍지 아니한가!
어떤 젊은이가 사진을 보여 주는데 너무 아름다워 허락을 받아 사진을 올려본다. 정말 신기하고 아름답다. 앞쪽에서만 감상을 할 수 있다. 역고드름은 꼭 종유석을 거꾸로 본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다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 갔다.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데 어찌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전쟁 중에도 부서지지 않고 철골이 저리 남아있다 한다.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 백마고지 전적지 팻말을 보고 그곳에도 가보자고 했다. 6.25 전쟁 때 격전지로 1만 4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인데 국군 9사단의 승리로 백마부대라고 한단다. 얼마나 치열하게 전쟁을 했는지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보면 백마가 쓰러져 누운 형상이라니.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하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백마상이 위용을 뽐내고 흰 자작나무 사이로 태극기가 도열해 있는데 멋있다. 갑자기 애국자라도 되는 양 가슴이 뭉클해진다. 태극기를 보고 기념탑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죽어갔을 젊은이들의 영혼에 묵념이 하고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