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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Feb 28. 2021

서울 길상사와 궁궐 나들이


법정 스님 생전에 부처님 오신 날이면 법회를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길상사가 언제부턴가 그리 가고 싶었다.

오늘 남편과 어디에 갈까 궁리하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곳, 서울에 있는 길상사에 가자고 하여 출발했다.

참 멀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달려도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지나는 길에 광화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언젠가 아들들과 또 친구들과 가 봤기에.

인천 촌녀가 서울은 가깝고도 먼 나라처럼 생각하는 곳이라.

길상사 주차장과 절 입장은 모두 무료다.

먼저 길상사는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이라는 분이 7천여 평의 대원각 터를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시주하여 절로 지었다 한다, 1995년 송광사의 말사(학교로 치면 분교)인 대법사로 등록한 후 2년이 지나 송광사의 옛 이름인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했다고 한다.

절로 들어서자마자 아기자기 정말 예쁘다. 길상 7층 보탑을 탑돌이 하며 나도 소원을 빌어보았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는데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있는데 입을 벌린 두 마리는 가르치는 교를,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참선의 선을 상징한다고 한다.


내가 법정 스님을 알게 된 것도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맑고 향기롭게" 시민운동을 하였으며 무소유의 삶 실천하신 분으로 송광사나 강원도 산골을 거쳐 2010년 3월 11일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실 때까지 머문 곳이다. 진영각에 가서 속세명이 박재철 임을 지갑 속 주민등록증에서 보았다. 참으로 청빈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유품을 통해서 느꼈다.

"스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노트에 나는

[법정 스님께

안녕하세요?

책으로만 뵈었는데 오늘은 직접 길상사에 왔습니다. 그리고 초상으로 뵙고 수목장으로 뵙습니다. 벼르고 별러서 온 길입니다. 물론 멀지 않은 곳인 인천이지만 늘 TV 뉴스 속 화면이나 신문 속 글, <무소유> 책 속에서 얼마나 동경하였는지 살아생전에 못 뵈온 것이 한이 됩니다.

늘 향기로운 분이라 지금도 어느 곳,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분으로 기억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스님이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은 좋은 곳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잘 살길 빌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곳에서 행복하시길요~ 2021.2.27 인천 ●●● 올림]

일필휘지로 쓰고 왔다.

오늘은 미세 먼지도 없는 쾌청한 날이라 더 좋았다. 절을 한 바퀴 돌고 입구 쪽으로 가니 호박 넣은 팥 시루떡을 한 개씩 가져가라고 한다. 가져오는데 따끈따끈하다. 그냥 먹을 수가 없어 탑의 불전함에 조금의 돈이나마 넣어 시주를 했다.

길상사에 오길 잘했다고 하며 차에서 떡과 오곡밥의 도시락을 먹고 궁궐로 향했다.

차를 길상사에 놓고 걸었다.

2KM 정도를 걷는데 다리가 아프다. 먼저 간 곳은 창경궁이다. 입장료는 천 원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드므는 궁의 건물 귀퉁이 처마 밑에 놓여 있는데 불이 났을 때 사용하는 물을 담는 용기란다. 화마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화재예방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쓰여있다.

창덕궁이 옆에 있어 들어가려는데 입장료를 3000원 내라고 했다. 속으로 참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시에 바란다'가 있으면 건의하고 싶다. 옆에 붙어있는 궁궐인데 입장료를 굳이 따로 받을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받더라도 한 번에 다 받으면 되지 왜 입장표 아깝게 그리 따로 받는지? 물론 하나의 궁만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랬다. 뭐 땅이 따로 떨어져 있어 관리하는 지역구나 문화재청이 다른 것도 아니더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다니는 남녀의 모습이 예뻤다. 한복을 입고 입장을 하면 무료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궁궐에 한복 입은 이들이 걸어 다니니 어울려 보이고 좋았다. 또 나무가 많아서 좋다.

왕비가 머문다는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다 한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설명해서 들었다. 용이 임금을 뜻하므로 임금을 생산하는 곳이라 용마루가 없다고 했다. 정말 쳐다보니 어색하게 민 머리 같다.

다시 창경궁으로 돌아오다 앙부일구를 보고 성종 태실과 태실비를 보았다. 유리로 된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온실이라던데 폐쇄를 해서 열린 창문으로 온실 내부를 찍어보았다. 미선나무의 꽃이 하얗게 피어 있어 신기했다. 마음 같아선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고 싶었다.

춘당지에는 잉어가 배가 고픈지 몰려들었다. 청둥오리마저 근처에서 먹이를 달라는 듯 우리 쪽으로 모여 길상사에서 받은 시루 떡의 팥을 던져주니 잠수하여 떨어지는 팥을 맛있게 먹는다. 지나는 길에 백송을 보았는데 나무껍질이 모두 하얗다. 위의 솔잎은 초록으로 대비가 되어 아주 신기했다.

춘당지 화장실 입구에서 젊은 엄마와 네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더 이상 못 들어가!"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향해

"그러다 엄마 잃어버리니까 빨리 화장실로 들어와."

하니 아이는 싫다며 저벅저벅 걸어 나온다.

우리는 아이를 향해

"정말 엄마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얼른 엄마 말 들으렴."

그때야 아이는 엄마를 따라 화장실 쪽으로 간다. 아마 남자라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웃음이 나온다. 쪼그만 녀석이. 보아하니 아버지도 안 보여 엄마를 정말 잃어버리기 딱 알맞던데.


궁궐 구경은 피곤하다. 다리가 몹시 아프다. 넓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곳이 모두 옛날 왕의 이야기고 서민적인 것이 아니라서. 내 개인 생각으로 먼 나라 먼 사람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다시 길상사로 돌아오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앉았다 다시 걷기를 여러 번, 드디어 차로 돌아올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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