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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Dec 30. 2020

서울에 이런 공원


※여성 시대 방송됨. 2017년 8월 27일-음식물 분쇄기 탐

서울 공원 예찬

“겁~나게 매미소리 들리네요 잉!”

땀이 송골송골 솟아 이마에 이슬을 달고 등짝이 눅눅해져 저절로 인상이 써지는 한낮에 헉헉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앞서가던 중년의 여인이 ‘겁나게’를 운운하며 말을 걸어온다. 291계단의 끝을 알리는 팻말을 보고서야 겨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겁나게’라는 소리에 그만 툭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겁나게요? 하하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걸요.”

그리하여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안산에 살고 손자, 손녀 넷을 다 키워주고 지금은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일 나가고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려니 쉽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혼자 훌훌 하늘 공원으로 왔다 한다.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댁과 같은 군산이 고향이라 ‘겁나게’라는 말투를 썼다고 한다. 서너 다리만 건너면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다 알게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휴일을 맞아 남편과 나는 언젠가 언론에서 흘려본 선유도 공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나선 길이었다. 자욱한 안개 같은 강물이 펼쳐지고 초록의 나무와 풀들이 하늘하늘거리는 선유도 공원이 무척 아름다워

“아! 좋다! 참, 예쁘다!”

를 연발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한강에 섬이 있었나? 선유도는 군산에 있는데, 아마 이름만 무늬일 거야’

독단을 했던 내 머리에 꿀밤이라도 주고 싶었다.

강 위에 다리는 좁은 나무를 여러 개 잇대어 만들어 놓았고 중앙은 조금 높게 좌우는 조금 낮게 만들고 양쪽에 난간을 세워 선유도와 연결해 놓았다. 그 다리는 강 위를 오작교처럼 연결해 놓아 신선들만 드나들도록 만든 것 같았다. 다리로 오르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때 흘린 땀을 에어컨 강으로 식혀주듯 다리 위는 강바람이 시원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빨간색 아치의 성산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회색빛 아치가 중앙에 있는 양화대교가 보인다.

옛 정수장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게 한 서울시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섬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도시와 단절된 섬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선유도 안에는 온실 속에서 빠알간 석류가 익어가고 분홍빛, 하양, 빨강, 노랑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군데군데 은행이 대롱대롱 매달려 노란빛으로 막 변해가고 있는 곳이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구름이 걸리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나무 중간쯤에 넓은 데크를 높이 놓아 손을 뻗으면 미루나무를 만질 수도 있는 곳이다. 정수장 물이 흐르는 곳에는 부레옥잠이 둥둥 떠서 오수를 즐기고 있다. 아! 이렇게 좋은 곳이 서울 도심에, 아니 한강 속에 있다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한강 줄 배 타기’ 행사를 한다기에 가보았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으라 더니 고풍스러운 부채까지 공짜로 준다. <梨花에 月白 하고 銀漢이 三更 인제 一枝春心을 子規야 아랴마난 多情도 炳인 양 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 李兆年> 다정가가 붓글씨로 쓰여있고 활짝 핀 매화 그림에 참새 두 마리 나는 수묵화가 그려져 있는 멋스러운 부채다. 학교 다닐 때 고전 시간에 외웠던 이조년의 시조를 부채 속에서 술술 읽어냈다. 사실 모르는 한자가 한두 개 있었는데 시조를 외웠던 터라 쉽게 읽어 내려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부채질을 하면서 조금 기다린 후, 구명조끼를 입고 나룻배에 타니 젊은 총각 둘이 하얀 고무신에 하얀 한복을 입고 선유도에 이어놓은 줄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우릴 태워주는 게 아닌가? 그들의 수고로움으로 우린 한강을 마음껏 즐겼다. 속으로는

‘와, 내가 한강을 배로 건너다니!’

내친김에 멀리 보이는 하늘 공원에도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차를 돌렸다. 여기나 저기나 주차료가 부담스러웠으나 다행히 작은 내 차로 이동을 해서 멋있는 경치를 구경하고 낸 주차료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하늘 공원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숨차게 오른 것이다.

난지도라고 하는데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화한 것이라 한다. 291계단을 지나고 나니 넓게 펼쳐지는 초록의 억새밭이 고창 청보리밭을 연상케 했다. 또 한 번의 감탄사를 쏟아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옆에서 우리를 졸졸 따라오는 여인은 해설사라도 되는 양 가을에 오면 억새꽃이 더 예쁘고 하늘하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더 아름답노라고 종알종알 거리신다. 그녀의 설명은 들은 척도 않고 눈은 늙은 오이와 단호박, 수세미가 열려 터널을 이루고 있는 곳에 벌써 닿아 또 비명을 지른다.

“우와! 예술이네~”

나이 먹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거늘 아름다운 하늘 공원의 경치에 그 여인이나 나나 입만 계속 열었다.

은빛 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하늘 공원도 좋겠지만 난 이 싱그럽고 진한 초록의 여름 억새밭 하늘 공원이 더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나면 다시 선유도와 하늘 공원에 가보기로 남편과 약속을 했다. 그날이 머지않은 가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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