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깨닫다>
도서관에 갔다. 요즘 내가 낭독하는 책은 박경철 의사가 쓴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이다. 유일하게 화요일만 수업이 없는 나는 몇 년 전부터 해온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를 하러 간다. 무슨 일이 없으면 도서관으로 향하는 게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이다. 그렇다고 내가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좋아서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이 행복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 여러 조건으로부터 개의치 않고 내 주관대로 소신껏 하고 산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종교를 가지고 있어 그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교가 정확히 없다. 아마 누군가가 꼭 종교를 택하라고 한다면 불교 정도? 그럴 리도 없지만 성실하지 않은 관계로 종교를 가지지는 않을 생각이다. 녹음실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내고 목을 맸다는 엄마 이야기, 50년을 수절하며 기다렸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시 만난 지 두 달 만에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간 이야기에 소리 내어 울고만 싶었다. 테이프 한 개를 다 녹음하고 녹음실 밖으로 나오니 대기하고 있던 다른 자원봉사자분이 계셨다. 멋쩍기도 하고 내 감정에 못 이겨 운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어찌나 슬프던지요. 울음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화장지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을 붙이니 그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서 당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서 쏟아내셨다. 지금 48세. 스물하나에 결혼하여 큰아이는 장애아로 낳아 길렀는데 아홉 살 되던 해에 유유히 하느님의 곁으로 갔다 한다. 지금은 작은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52살 남편과 사는데 인천제철 명예퇴직하고 경비로 일하다 잠시 쉰다고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명퇴라는 소릴 듣고 언론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알고 가슴 아팠다. 하지만 퇴직금이 많았던지 33평 아파트도 있고, 동인천 지하상가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가게 세로 받는 50만 원 정도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이다. 이해는 갔다. 종교적인 힘을 빌려서라도 큰아이 일을 잊을 수 있다면. 묻지도 않은 말들을 털어놓는 그분의 이야기에 고개를 조아리며 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인데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다고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 학력을 취득하고 성경공부를 몇 년 했다고 하셨다. 어렸을 때 너무나 가난해서 보리쌀 구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찰진 조밥이 아닌 모이 조밥과 보리쌀을 섞어 드셨다고 했다. 문득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가 떠올라 말씀드렸다.
"저는요. 보리 혼식 도시락 검사할 때 꽁보리밥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하얀 쌀밥 싸와서 도시락 숨기는 아이들이 오히려 부러웠어요."
그렇게 그분과 지나간 이야기를 하다 나는 정말 부유함 속에 가난이라고 생각하며 산 경우이고 그분은 가난함 속에서 부유하다고 생각하며 산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이 없던 날, 정부미 40KG을 누군가 놓고 갔더란다. 하느님이 주신 거라고 생각하며 먹었는데 또 떨어질 때가 되어 쌀이 있더란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께
"목사님이 저의 집에 쌀 가져다 놓으셨죠?"
하니 아니라고 하시는데 다음에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이 갚는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분은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다른 봉사도 열심히 하시는 이유 같았다.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그분에게서는 향기가 느껴졌다. 우리 도서관에는 낭독 봉사하는 분들이 교수, 전직 교사, 의사 부인, 자영업, 주부 등 저마다의 뜻을 가지고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분처럼 마음에 빚을 갚고자 하는 분들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웠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 내 마음에 덕을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