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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Dec 30. 2020

니들이 게 인생을 알아?

제19회 안산 전국 여성 백일장 입선작품

큰햄섬에서 만난 게


  주말에 남편과 새로운 섬 투어에 나섰다. 김장을 끝낸 후라 마음속에 짐을 내려놓아 발걸음까지 한결 가벼웠다. 안산 대부도까지 가서 동주염전을 거쳐 들어가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좁은 길이다.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도착한 곳은 막다른 길에 집이 한 채 있을 뿐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다. 주차를 시키고 자세히 보니 집이 있는 왼쪽 가장자리로 풀이 우거져 있고 <사유지>라는 팻말이 보인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시들어가는 모습으로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그냥 풀밭으로 보였는데 옆으로 돌아가 보니 길게 뻗어있는 길이 보인다.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아주 작은 거북햄섬을 지나 큰햄섬에 가는 길은 단단한 흙으로 이어져 있어서 과연 이곳이 물이 들어찼던 곳인가 싶었다. 그런데 큰햄섬으로 들어가는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갯골에 물이 졸졸 흐른다. 멀리서 보기에는 편안한 길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에 가서 보니 질퍽거려 걸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남편은 그 길을 어떻게 가나 고심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멍을 드나드는 게를 보느라 즐거웠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신발이 다 젖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얼른 나와!”


  남편의 말에도 들은 척 않고 도망가는 게를 쫓아가 본다. 그런데 그 녀석은 혀를 날름하듯 눈을 높이 세우더니 얼른 굴속으로 도망간다. 나는 갯골이 있는 쪽으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뎌보며


 “에이, 조심히 걸으면 발이 안 빠져. 그리고 언제 돌아가? 그냥 여기로 가 보자.”


  고집을 피우며 한발 한발 신중하게 내딛는다. 그런데 바로 내 앞에서 또 한 마리의 게가 나타나 나를 노려본다. 그 눈빛이 반항아 같다. 두 집게발은 머리 위로 벌려 높이 세우고 양쪽 8개 다리는 개펄을 높게 딛고서 말이다. 보통의 게라면 인기척에 놀라 구멍 안으로 얼른 숨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와 싸움이라도 한 판 할 기세다.


  “어머, 이 자식 보게나. 어디 한 번 싸워 볼텨?”


  몸을 숙여 맨손으로 겁도 없이 게의 몸통을 눌러 집어보려 했다. 그런데 집게발로 나를 물려고 해서 비명을 지르며 놓았다. 도망갈 줄 알았던 게가 다시 전투 자세로 나와 대적을 하겠다는 듯 자세를 취한다. 무엇으로 그놈을 잡을까 생각하다 얼른 휴대전화 속에 있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집게발에 밀어 넣으니 꽉 깨문다.


  “옳거니. 잘 됐다. 한 번 갈 때까지 가보자.”


  한 손으로 명함에 붙은 게를 들고 질척이는 개펄을 얌전히 걸어 앞으로 나아간다. 뒤에서 남편은 신발 다 버린다며 큰 소리로 나오라고 나를 불렀지만 뒤돌아 나가기도 싫고 또 가 보지 않고 포기를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계속 전진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의 말대로 나가야 하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 가본 길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로 내처 걸어보았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남편더러 내 발자국만 밟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결국 그도 내 고집에 포기를 했는지 중얼중얼 잔소리를 하며 따라왔다. 그때까지 게는 명함을 꼭 물고 나와 동행을 했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마, 이 게가 나와 비슷한 성향으로 고집도 세고 호기심도 많나 보다.’


  잘못하면 생명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게가 겁이 없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겨우 개펄에서 빠져나와 등산화를 살펴보니 진흙이 엄청 달라붙어 있었지만 푹 빠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며 한참을 걷는데 남편은 내가 매달고 가는 게를 보더니


  “그만 살려 줘! 당신도 힘들고 이것도 힘들어.”


투덜거리는 말에 그 녀석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물이 졸졸 흐르는 곳을 찾아 놓아주니 고마워하기보다 한 번 더 나를 째려본다.


  “아고, 저 녀석!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저러고 있나 보자. 어, 그런데 이 길로 안 오겠구나. 섬을 한 바퀴 돌면 이곳은 못 오지. 암튼 잘 살아라. 이 대단한 게야.”


  혀를 끌끌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볼 때는 아주 작은 섬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걸어보니 꽤 컸다. 한쪽은 해수욕장처럼 가는 모래가 있었고 또 다른 곳에 다다르자 자갈이 깔려 있었다. 나무나 풀이 우거진 곳도 있었으며 떠밀려온 쓰레기로 지저분한 곳도 여러 군데 있었다. 그중에 축구공이 보여 남편과 공차기를 몇 번 했다. 바람이 빠지지 않아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주인 없는 물건이라도 내 것이 아닌 것에 손대고 싶지 않아 놓고 왔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다른 길이 없다. 여러 개의 갯골이 섬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우리가 빠져나갈 길은 온 길 빼놓고 전무였다. 섬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남편은


  “당신 말 안 들었으면 이 섬에 오지 못했겠다. 난 다른 길이 있을 줄 알고 나가자고 했는데…….”


  미안해하는 말끝에


  “것 봐, 호기심이나 고집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니까.”


  돌아 나오는 길에 내가 계속 밀어붙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찾아 헤매느라 큰햄섬에 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곧 밀물이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나에게 반항하는 게 역시 무릇 다른 무리와 달라 새로운 곳으로 꽤 먼 거리 여행을 한 것은 아닐까. 그곳 게 구멍에 숨었더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 것을. 그곳만이 살 곳이라 생각했겠지만 명함을 물고 놓지 않은 까닭에 힘들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쉽게 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물론 한 곳에 안주하는 삶이 편할지도 모른다. 안 가본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멈추면 그만큼 고생을 덜 하겠지만. 긴 인생을 살면서 다른 길에 도전을 하면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어 더 즐겁지 않을까. 전투적인 게와 내가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는데 박수를 보낸다. 큰햄섬 다른 쪽 바다에서 그 게가 잘 살아가길 빌며 새로운 섬 투어에 만족감을 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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