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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pr 19. 2022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다가 앞접시에 떨어트리고, 깍두기를 집으려다 무가 그릇 밖으로 튀어나갔다. 한창 젓가락질을 연습 중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이야기가 아니고, 방년 34세 나의 이야기다.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와 겸상을 피했다. 할아버지가 내 젓가락질을 볼 때마다 불호령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나는 통상적으로 ‘올바른 젓가락질’이라 불리는 한쪽은 엄지와 검지, 중지로 가볍게 잡고, 다른 한쪽은 약지 끝으로 젓가락을 지탱하면서 엄지를 지지대 삼아 위쪽 젓가락만 움직이는 젓가락질이 아닌 아닌 내 멋대로 젓가락질을 했다. 사실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젓가락질을 배웠다. 엄마나 선생님 앞에서 할 줄 안다며 내 젓가락질을 곧잘 뽐내곤 했지만, 본 식사에 돌입하면 내 멋대로, 내가 쥐기 편한 대로 슬쩍 방법을 바꾸어하다가 이렇게 굳어버린 것이다.


 엄마가 내 젓가락질을 혼낼 때마다 당시 유행하던 DJ DOC의 노래 ‘DOC와 춤을’ 중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구절을 부르며 통습을 따르길 거부했던 어린이였고, 나중에 커서 상견례에서도 이렇게 젓가락질하면 부모 욕 먹이는 짓이라는 엄마의 간곡한 호소에도 그러면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양식집에서 상견례를 하면 된다고 따박따박 반박하며 엄마 말을 안 듣던 육아 난의도 상의 청개구리가 30대에 들어서서 젓가락질을 스스로 교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기는 참 단순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을 봤는데 그게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밥 먹을 때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내 젓가락질이 무척 신경 쓰였던 것이다. 젓가락질을 정석대로 하지 않아도 밥 먹는 데는 지장이 없고(사실 연습하는 지금이 더 지장이 크다), 이젠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만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사실 정석 젓가락질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른 젓가락질의 탄생은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가 서구화되면서 포크 사용이 늘었고, 젓가락질이 서툰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젓가락질 교육을 위해 하나의 예시로 설명한 것일 뿐 역사적으로 젓가락질에 대해 설명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생활 예절을 적은 책인 이덕무의 <사소설>에서도 식사예절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 없다. 조선시대에는 젓가락보다 숟가락 사용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젓가락질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었고, 현재 사용하는 젓가락질은 1920년대 즈음 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에 접어들자 젓가락질 같은 사소한 것에서도 남들 눈에 띄어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컸다. 철이 들어버린 건지, 꼰대가 되어 버린 건지 어른들에게 지적받는 것이 지겨울뿐더러 이에 반항하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어른이 내 젓가락질을 보곤 ‘젓가락질 고쳐야겠다.’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나는 노력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굳이 “그런데, 젓가락질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 아세요?”라고 화제를 던졌다. 올바른 젓가락질 방법을 찾다가 알게 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식사 중 스몰토크로 괜찮을 것 같아서 한 말이기도 했고, 마지막 저항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 내 기대와 달리 식사 테이블에는 3초 정도 정적이 흘렀고, 요즘 말로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철없는 소리를 하는 너는 개선의 여지가 없으니 체념하겠다’ 따위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잠시 흐른 뒤 그분은 내게 고개를 돌리고 곧바로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 잠깐의 침묵이 얼마나 민망하던지. ‘못 배운 사람’ 취급받은 멸시감과 그냥 “네”, 하고 넘어갈걸 왜 경솔하게 그 말을 덧붙였을까 하는 후회 속에 식사를 마쳐야 했다. 그날 이후,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상범위의 어른이 되자’, ‘젓가락질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내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도 이런 나의 은근한 반항아적 기질 탓은 아닐까 확장하고 자학하기까지 했다.


 내 서툰 젓가락질과 이에 따른 나의 가상한 노력을 알고 있는 친구와 파스타를 먹을 때였다. 나는 왼손에는 숟가락을, 포크를 쥔 오른손으로 면을 집어 숟가락 위에서 돌돌 말아먹는다. 딱히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텔레비전에서 본 뒤로 꽤 오래전부터 이 방식으로 파스타를 먹는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파스타를 이렇게 예쁘고 깔끔하게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어른들이 젓가락질로 또 뭐라 하시거든 포크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드려.”라고 덧붙이고는 웃는다. 놀라 할 말을 잃었다. 파스타를 흔히 접하게 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쭉 같은 방식으로 파스타를 먹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일이다(나도 몰랐고, 생각해본 적 없다). 친구의 관점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 친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스타 먹는 걸로도 칭찬받을 수 있구나. 나도 뜯어보면 칭찬할만한 구석이 있구나. 낮은 자존감에 작은 물결이 친다. 나마저도 잘못된 것이라 치부해버린 내 젓가락질로 34년간 잘 먹고 잘 살았다. 젓가락질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 아무 거니까 교정의 노력은 변함없이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까지 내게 ‘넌 젓가락질도 못하냐’하고 자책하진 말아야지. 언제부턴가 작은 것 하나하나 다 내 탓을 하며 작아져버렸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리. DJ DOC 노래를 부르던 철없던 시절의 무모한 자신감만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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