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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Sep 01. 2021

잃어버린 장어덮밥

 여름철이기도 하고 몸이 허해진 것 같아 큰 맘을 먹고 장어덮밥을 먹으러 갔다. 장어덮밥은 맛도 좋지만 먹는 방법이 재미있다. 우선 함께 나온 작은 주걱을 이용해 덮밥을 4등분으로 나누고, 1/4씩 앞접시에 덜어 먹는다. 첫 번째는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해 그냥 먹고, 두 번째는 고추냉이와 김 등 곁들여 나온 양념을 가미해 즐기고, 세 번째는 녹차나 다시물 등 업장에서 제공한 육수를 부어 먹는다. 마지막 남은 1/4은 앞의 세 가지 방법 중 가장 맛있었던 방법을 이용해 먹는다. 이렇게 식사 중 조미료 따위로 음식의 맛을 바꾸는 것을 일본에서는 '아지헨'이라 부른다.


 한 가지 음식을 세 개의 방법으로 나누어 즐기는 것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는 것처럼 마지막 한 덩이의 장어덮밥을 어떤 방법으로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퍽 재미있다. 단순히 먹는것이 아니라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맛도 좋고, 먹는 재미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장어덮밥의 유일한 단점은 다소 높은 가격이지만, 가격보다 효용이 더 큰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 장어덮밥 맛집을 다 방문해보겠다고 리스트를 작성했을 정도로 오늘 식사가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 세안을 하는데, 세안제가 얼굴에 닿자 따가움을 넘어 아픔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칠 정도였다. 세안제를 겨우 씻어내고 거울을 보니 양 볼을 중심으로 4-5센티가량 벌겋게 두드러기가 나 있었다. 2년 전부터 발생한 만성 두드러기로 대학병원도 다니고, 유명하다는 동네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며 극악의 대기시간을 견디기도 했지만, 증상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지난주 점심시간에는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연어덮밥을 먹고 돌아와 오후 업무를 하는데 눈에 뭐가 들어간 것인지 눈앞이 잘 안 보여서 거울을 봤더니 눈두덩이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퉁퉁 부어오른 적도 있었다. 연어를 먹고 전신에 두드러기가 난 적도 있어 그땐 먹은 음식이 잘못된 줄 알았는데,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생기고 난 뒤로는 연어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잘 먹던 음식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게 여간 섭섭하지 않은 참이었는데 몸보신하겠다고 기껏 장어를 먹은 뒤 얼굴을 뒤덮을 정도의 두드러기라니! 급하게 처방받아둔 스테로이드제를 먹고 약을 발랐지만 증상은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되도록 스테로이드제를 먹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이렇게 심한 증상이 있으면 스테로이드제 밖에는 답이 없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그간 고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꾸 악화되는 몸 상태에 대한 절망과 앞으로 이렇게 하나둘씩 내가 누리던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현실에 서글퍼진다. 20대에는 참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30대가 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별수 없이 놓아버려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음식 양을 줄이, 자꾸 소화가 잘 되는 부드러운 음식만 찾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떠나는 시기가 30대인가 싶고, 역시 사라져야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인생사인가 싶다. 술을 포함한 즐기던 음식, 미세먼지를 확인하지 않고 창문을 열기, 해외여행에서 조금 불편하지만 잠만 자는 저렴한 가성비 숙소를 써도 만족했던 것, 마스크를 끼지 않고 외출하는 것... 또 올 해 내가 놓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마음을 다잡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 증상을 검색해 갈 만한 병원을 찾아두었다. 2년 반의 지겨운 병원 투어를 언제 끝낼 수 있을까. 오늘은 울어버렸지만 내일은 또 장어를 대체할 음식을 찾고, 병원을 찾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겠지. 작성한 장어덮밥 맛집 리스트는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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