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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l 26. 2022

천도복숭아 한 바구니 5천원, 완전 반갑

 동네에 오랜 기간 빵집이었던 건물이 있다. 삼거리 코너에 있는 건물인데, 건물 바로 앞에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어 건물 앞은 늘 북적거렸다. 비 오는 날이나 햇볕이 뜨거운 날이면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건물 지붕 아래에 서 있다가 버스가 오면 후다닥 달려 나가곤 했었다. 


 원래 이 자리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가, 이후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 브랜드는 바뀌었어도 같은 자리에서 오래 동안 빵을 굽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그야말로 ‘빵집 자리’인 가게였다. 빵집은 이 주변의 상징처럼 여겨져 심지어 마을 버스정류장 이름이 빵가게 이름일 정도였다. 그러다 마을버스 버스정류장을 바로 한 블럭 옆으로 옮겼고,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손님이 점차 줄더니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


 빵집이 문을 닫고 한참 동안 공실로 유지되면서 종종 생활용품이나 속옷 등을 파는 상점이 빨강과 검정, 노랑으로 구성된 화려한 폐업 세일 현수막을 걸고 며칠씩 반짝 영업을 하고 나갔다. 얼마 전부터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가 영업을 시작했다. 길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가게 앞에 놓인 과일을 보게 된다. 수박, 자두, 참외까지. 과일이 진열되어 있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둔다면 사진을 찍은 날짜는 몰라도 누가 봐도 여름이라는 계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일 가게의 시간은 얼마나 정직하고 푸근한지. 지나가면서 흘긋 보기만 해도 계절을 잊고 살았던 오감을 깨워줄 제철 식재료가 가득이다. 


‘아 벌써 7월? 뭐했다고 7월이냐. 나 또 몇 달 있음 한 살 더 먹나’ 


 이런 생각만 했지, ‘아, 여름이구나’하고 계절을 오롯이 맞이하지 못했던 나를 질책하듯 바구니에 담긴 초당옥수수와 포도가 여름이 왔다고, 고개를 좀 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옆에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과일을 정리하는 주인, 혹은 털털거리는 선풍기와 텔레비전이 있는 가게 안쪽에서 손님을 보고 걸어 나오며, “그거 오천 원. 오늘 아침에 강원도에서 온 거예요. 물건 좋아요.”하는 목소리까지. 과일 가게 풍경 중 배경이 여름이 아닌 것이 없다.


 가게 앞에 진열된 과일 바구니에 박스를 잘라 붙여둔 가격표가 비스듬하게 붙어있다. 수제 가격표에는 ‘천도복숭아 1바구니 5000원, 완전반갑’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 봤을 땐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했는데 가게 앞에서 “완전 반 값! 싸다 싸! 하고 외치는 주인의 말에 ‘아, 반값, 50%라는 말이구나’ 깨달았다.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반값’을 ‘반갑’이라고 쓸 수 있으니까.



 혹은 이중적 의미가 아닐까.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복숭아야 완전 반갑(다)! 이런 의미와 가격을 동시에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문 제작한 가격표도 아니고, 매일 시가에 따라 박스를 잘라 새로 만들어두는 가격표 같은데 꽤 오래 동안 가격표에 써 있는 반갑 멘트를 고치지 않는 걸 보면 그쪽이 더 신빙성 있다. 너무 귀여워 가게 앞을 지날때마다 웃음이 난다. 나도 반갑다 수박, 자두, 복숭아야. 마스크 속에서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천도복숭아 한 바구니 오천원, 나도 완전 반갑! 여름 완전 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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