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야 Jul 25. 2022

잃어버린 우산, 그리고 옷장 속 그것

살, 빼고 싶습니다.

“전 품목 20% 할인”


 사람을 홀리는 마법의 문구가 아닐까. 할인, 세일, 파격가, 원 플러스 원, 재고처리, 원가세일, 노마진(이건 좀 옛날 말인가)...


 집 앞 마트가 내부 보수 공사 기간 동안 문을 닫는다. 그래서 전품목 20% 할인 행사를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홀린 듯이 들어갔다. 달걀이랑 로즈마리만 사려고 했는데 어느새 과자 몇 봉지와 라면까지 사버렸다. 집에서 정말 가까운 마트라 어지간하면 봉투를 구입하지 않고 손에 들고 가는 편인데 세일 욕심에, 이미 비어버린 진열대를 보고 어쩐지 다급해진 마음에 손에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물건을 골라버렸다. 그래도 바구니를 들지 않은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손이 자유로웠으면 더 마음껏 담았을 것이다. 합리화하자면 먹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날로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미리 사두면 이익이라 산 것이다.


 집에 와서 종량제 비닐봉지 속 제품들을 정리하다가 과자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사실 엊그제도 그 마트에 가서 슬쩍 과자 한 봉지를 사 왔었다. 조금 출출해지니 바로 눈앞에 있는 과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과자를 보고 먹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출출하다고 최면을 건 가짜 배고픔이었는지도 모른다. 딱 1/3만 먹으려고 했는데 잔뜩 굶주린 사람처럼 한 봉지를 다 먹어버렸다.


 내가 음식을 섭취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배가 고파서, 즉, 몸에 열량이 필요하여 먹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식욕 때문이다. 나의 식욕은 필요한 열량과 관계없이 배가 불러도 음식을 넣을 공간을 만들어 내고, 내 주변에 음식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상기하여 결국 다 먹은 후에야 만족을 느낀다. 전자보다는 후자 때문에 먹는 간식의 열량이 더 높고, 더 몸에 좋지 않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식욕을 억제하는 방법 중 ‘양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매일 저녁을 먹고 나서 바로 양치하고 절대 다른 것을 더 먹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러나 내 의지는 꽤 빈번하게 식욕에게 패배했다. 다시 양치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지금 당장 먹는 것이 더 좋다. 공연히 양치를 두 번씩 하게 되어 잇몸만 상할 것 같다. 


 과자가 있다는 것을 잊으려면 적어도 눈앞에 보이지는 않게 두어야 할 것 같아 방 안에 잘 쓰지 않는 옷장 문을 열고 과자와 라면을 몽땅 넣어버렸다. 잘 쓰지 않는 데다가 옷장 앞에 화장대 의자가 있고 그 위에는 가방 등 짐이 있어 문을 열고 닫기 꽤 번거롭다. 그래서 더 잘됐다. 언제까지 저 옷장을 봉인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자신도 없지만 내 안의 식욕과 싸우고는 있다. 남이 보기엔 자제 없이 먹는 것 같아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식욕과 싸우는 중이란 말이다!


 장마기간이라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어느 일요일,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혼밥러들을 위한 창가 앞 바 자리 구석이 비어있는 걸 보고 다가가니 빈자리에 우산이 놓여있다. 누군가 자리를 맡아두고 주문을 하러 갔나 보다 싶어 다른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우산 주인은 오지 않았다. 식사 중 내려놓은 우산을 깜빡하고 간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은행 ATM기에 인출하러 갔더니 ATM기 위에도 주인 잃은 우산이 쓸쓸히 놓여있었다. 인출 후 도서관으로 돌아가 도서관 마감 시간까지 있다가 마지막으로 빈 열람실을 나가다가 또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우산을 보았다.


잊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달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ATM기 위에 남겨진 장우산이 애처롭다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잊기 딱 좋은 위치에 두긴 했구나(열람실에 아무도 없어 찍음)


 만일 밖에 비가 내렸다면 우산 주인들은 우산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기 전 신경 써서 찾았을 테고, 잊고 가다가도 내리는 비를 보며 다시 우산을 가지러 왔을 것이다. 날이 좀 우중충하고 땅은 젖어있었지만 비가 내리지는 않는 이런 날이 우산 잃어버리기 좋은 날인 것 같다.


 엉뚱하게 우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눈 앞에 당장 닥치지 않으면 소홀해지고, 잊게 된다는 걸 세 시간 동안 세 번이나 연달아 주인 잃은 우산을 보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 덜 할 것이다. 낮에 비가 내렸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요해서 들고는 나왔지만 현재는 필요 없어진 물건에 대한 생각이 작아지는 그런 일처럼. 싸니까, 좋아하는 과자니까 좀 쟁여둘까 싶어 사 오긴 했지만 나는 저 과자가 필요 없다고 억지로 세뇌하며 과자에 대한 생각을 줄여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고로, 먹보의 옷장 속에는 감자칩이 들어 있다.


이전 07화 체중감량, 도... 도전해보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