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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May 23. 2022

체중감량, 도... 도전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사약인가. 아니, 그간의 방탕한 식습관을 채찍질하는 맛이다. 쓰다. 쓰고 또 쓰다. 스타벅스에서 항상 마시는 메뉴는 자몽 허니 블랙 티인데, 일반 시럽을 빼고 마셔도 액상과당 섭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3주 안에 4킬로 체중감량을 결심한 만큼 오늘은 제주 말차 라떼를 주문하고, 오트 밀크로 변경한 뒤 시럽을 모두 빼버렸다. 녹차가루 자체에 당분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그냥 오트 밀크에 말차가루를 섞은 것이다. 이 씁쓸한 맛은 살 빠지는 맛이다. 왜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가. 나는 시방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지방을 연소시키는 중이다.


 3주에 4킬로 감량이라는 다소 무모하고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된 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브라이덜 샤워 때문이다. 브라이덜 샤워 때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솔직히 친구의 브라이덜 샤워가 아니라 내 베이비 샤워인 줄 알았다. 왜 그런 포즈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불룩한 배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있는 모습이 마치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처럼 보였다. 10년 이상 함께한 절친들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보고 함께 눈물 날 때까지 웃긴 했지만 웃음 뒤에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겉모습도 자극제가 되긴 했지만 사실 실용성 측면에서도 살을 빼야만 했다. 살이 찌자 어떤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 태는 안 나도 입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도저히 입지 못할 옷이 늘어난다. 반품 택배비만 늘어간다. 온라인으로 봤을 땐 분명 헐렁해 보였는데 내겐 꾸와아악 끼어 팔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그나마 적었던 옷 가짓수에서 입을 수 없는 옷을 제외하고 나니 거의 단벌신사가 되었다. 세상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데 확찐자가 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니.


 다이어트의 꽃은 식단 조절이니까 식단을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야채수프가 생각났다. ‘아침마다 이거 먹고 8킬로 감량 중’이라고 쓰여 있는 썸네일이 너무 자극적이라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상 속 그녀는 진짜로 홀쭉해진 얼굴에 라인이 살아나고 있었다. 야채수프는 샐러리,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의 야채와 향신료를 넣고 뭉글하게 끓인 음식이다. 생각보다 맛있다는 유튜버의 이야기에 딱히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야채수프에 대한 수백개의 댓글이 너무 우호적이었다. 특히, 체중감량 목적도 있지만 건강에도 좋다는 말이 많았다.


 반신반의하며 야채수프 재료를 구매했다. 샐러리, 당근, 양파, 토마토, 렌틸콩, 월계수 잎, 바질, 파슬리까지. 간단해 보였는데 은근 구입할 것이 많다. 역시 다이어트도 재력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만들기는 아주 간단하다. 채소를 깍둑썰기 한 뒤 기름 두른 냄비에 양파를 넣고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양파가 어느 정도 익으면 야채를 모두 넣고, 재료가 잠길 정도까지 물을 붓고 끓이면 된다. 여러 번 끓여본 팁이라면 토마토는 1/3 정도 남겨두었다가 마지막에 넣는다. 끓이다 보면 토마토가 풀어져 묽어지고 나중에는 건더기가 아예 없어지는데 이렇게 하면 토마토 건더기도 함께 먹을 수 있다. 재료는 원하는 대로 가감 가능하다. 단백질이 필요하면 불린 콩을 넣어도 좋고, 지방이 적은 부위의 고기를 넣어도 된다. 냉장고에 있는 다른 야채를 넣어도 좋다. 모든 재료를 넣고 30-40분 푹 끓여서 토마토가 다 우러나고 국물이 진해지면 월계수 잎을 건져주고 소금 간을 하면 끝이다.


 그릇에 담고 후추와 파슬리가루를 톡톡 뿌려주면 제법 요리 같은 느낌이 난다.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나쁘지 않다고 했지 맛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참고로 내 입맛은 철저히 자극적이고 칼로리 높은 음식에 반응한다). 신선하고 건강한 맛이랄까. 일단 토마토를 많이 넣고 진하게 끓여서 토마토파스타 같은 향이 난다. 사실 재료 자체는 토마토소스 베이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데다가 월계수 잎, 바질, 파슬리, 후추까지 때려 넣었으니 향신료 파티인데 맛이 없기도 힘들다. 그래도 평소 잘 먹지 않는 야채를 듬뿍 섭취할 수 있어 좋다. 속도 마음도 편하다. 식으면 용기에 1회 분량씩 담아 냉장 보관했다가 하나씩 꺼내 레인지에 3분 정도 돌려 먹으면 된다.


 단백질도 필요하니 야채수프 한 그릇에 닭가슴살 한 팩을 한 끼 식사로 정했다. 첫 주에는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무척 신났다. 올라갈 때마다 200-300그람씩 감소했다. 몸무게가 줄어드니 식단을 지키는 것도 신나고 쉬웠다. 역시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킬로 감량에 성공했을 뿐 그 뒤로는 딱히 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원인은 야채수프와 닭가슴살 말고 다른 것도 먹는 데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극단적 식단이 정신건강과 지속성에 더 해가 갈 것이라는 판단이었는데 추가 감량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뜻이다. 섬찟하다. 내가 먹은 것으로 이름을 만든다면 지금 내 이름은 ‘야채수프 삶은 계란 자몽 허니 블랙 티 고구마 말랭이’다. 자기 전 이름은 저 두배의 길이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렇게 이름을 부른다면 섭취량과 메뉴명에, 이름 길이에 굴욕감을 느껴 식단 조절을 철저히 할지도 모르겠다. 내과에 가서 선생님한테 식단 관리 잘했다고, 튀긴 것과 밀가루를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밤늦게 귀가하면서 술은 안 마셨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체중감량을 떠나 건강해질 것 같다. 정신건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체는.


 ‘You are what you eat’ 이 문장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참 먹보 다운 발상이다. 예전에 친구가 혼밥 하면서 볼 예능을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망설임 없이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능 ‘골목식당’, ‘편스토랑’, ‘윤스테이’를 추천했다.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다른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넌 어떻게 예능도 먹는 것만 보냐”고 했다.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진짜로 그랬다. 이 식탐을 이겨내고 체중 감량을 해야 하다니. 나는 지금 엄청난 상대와 대치 중이다.


 지난 주말, 결혼하는 친구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다. 대학 선후배 모임이다. 모두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은지 오랜만에 다 모이니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다. 마음은 그 시절 그대로인데 몸무게랑 나이만 늘었다. 나이 드는 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몸무게 증가는 어찌해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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