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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l 04. 2022

애착 고등어 탄생기

 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 안, 내리기 전에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인사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봉투 손잡이가 떨어졌다. 졸던 친구는 쿵 소리에 놀라 깼고, 나는 어이없어 터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웃다가 친구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친구들과 1박 2일로 안동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안동역까지는 KTX로, 안동역에서부터는 친구 차로 다니기로 했다. 11시에 안동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안동간고등어 맛집으로 향했다. 안동에 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가 안동 간고등어 먹기, 두 번째는 하회마을 가기, 세 번째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에 가서 “합시다, 러브” 대사를 읊으며 사진찍기였다.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건만 이번 여행에서는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달성했으니 대만족,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간고등어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 앞에 두 줄로 놓은 대기자용 플라스틱 의자에 공석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한국인다운 팀워크와 스피드를 발휘해 운전을 맡은 친구는 가게 앞에 우리를 먼저 내려주고 주차하러 가고, 나는 재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30분 정도 시간이 걸릴거란 가게 주인의 말에 가게 바로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구경을 하기로 했다. 하회탈 마그네틱을 만지작거리는 우리에게 기념품 가게 주인이 식사는 했냐 물었다. 간고등어를 먹으려고 기다리는 중이라는 우리의 말에 “고등어?” 하시더니 바로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역시 안동에 왔다고 간고등어를 먹는 것은 무척 ‘관광객스러운 일’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30분 정도 대기 후 구이 2인분, 조림 2인분을 메인으로, 식전음식으로는 안동식 식혜를 주문했다. 안동식 식혜는 흔히 아는 그 식혜와 달리 동치미 느낌의 빨간 국물로, 안동의 특산물인 생강 맛이 났다. 드디어 나온 안동 간고등어의 맛은 엄청났다. 오동통하고 기름진 생선살이 적당히 짭짤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고등어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생선인데 해안가도 아니고 내륙지방인 안동이 간고등어로 유명해진 건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선조들의 지혜 덕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영덕항에서 안동까지 운반하는 동안 생선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배를 갈라 소금을 뿌리던 데에서 유래한다. 10리를 이동하면서 길 위에서 햇빛과 바람에 자연숙성된 간고등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소금 간이 짭짤하게 밴 것이 특징이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생선 살 한 점과 흰쌀밥을 한 입, 안 그래도 맛있는 간고등어에 매콤한 양념으로 자작자작하게 조린 조림 한 점과 밑에 살짝 눌어붙은 무 한 점을 올려 또 한 입 먹다 보니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신발을 신다 보니 카운터 앞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는 팔뚝만 한 간고등어에 눈이 간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된다는 걸 알지만 어쩐지 이 식당에서 사야 조금 전에 먹은 맛이 날 것만 같다. 게다가 내일은 가게 휴무라니, 오늘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홀린 듯 간고등어를 주문하고 사이즈를 고르는데 택배 배송 시 냉동탑차가 아닌 일반 택배차를 이용한다는 말에 그럼 ‘우리 차에 뒀다가 가져가는 거랑 다를 게 없네?’ 하는 비이성적인 사고가 우리 4명의 뇌를 순간적으로 지배해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택배비 3천 원을 절약하고, 집에 갈 때 내 손에 간고등어를 들고 가는 것이 왜 합리적으로 보였던 걸까. 집단 최면도 아니고 왜 4명 다 그렇게 생각해버렸을까. 그렇게 우리의 1박 2일 애착 고등어가 탄생했다. 친구들이 800g짜리 간고등어를 한 손씩 주문했을 때 나는 또 왜 우리 집 꺼 1kg짜리 한 손에 선물용까지 두 손을 주문했는가. 간고등어 무게만 도합 1800g에 아이스팩 대형 두 개를 넣은 스티로폼 박스를 담아 2kg쯤 되는 종이봉투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1박 2일 짐으로 2/3쯤 찬 트렁크에 테트리스하듯 간고등어가 든 스티로폼 박스 4개를 쌓고, 한옥카페로, 하회마을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저녁때가 되어 도착한 리조트 직원분이 큰 고등어 네 상자를 보고 “아이고오... 이걸 샀어요? 어디서 샀어요?” 하셨다. 리조트 내 이동차량 짐칸에 우리 짐을 싣고 나니 자리가 없기도 하고, 아무래도 고등어가 떨어질 것 같다고 하나는 손에 들고 타라고 하셔서 한 손에 고등어를 손에 꼭 쥐고 리조트 투어를 마쳤다. 후진할 때는 짐 칸에 삐죽이 솟은 고등어들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뒷자리에 앉은 내가 한 손을 치워드려야 했다. 투어 후에는 친절하게도 관리동에 있는 대형 냉장고에 우리 고등어를 보관해주셨다. 도착해보니 숙박객 숙소에 있는 냉장고는 고등어를 넣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등어를 산 걸까. 왜 택배로 보내지 않았을까. 일정이 끝날 무렵에 산 것도 아니고 도착하자마자 첫 일정에 샀을까.


 체크아웃하면서 열쇠 반납과 함께 우리의 고등어를 돌려받으니 아찔했다. 더운 날씨에 이미 체력은 어제의 체력이 아니었고, 장마철이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다가 무척 후텁지근했다. 이걸 들고 KTX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1시간을, 지하철을 갈아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안동역 앞에서 둘째 날 관광 내내 친구의 차 트렁크에 있던 고등어를 받아 드니 냉동해 둔 것이 좀 녹았는지 봉투가 눅눅했다. 마지막으로 안동역 앞에서 고등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헤어졌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미처 역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봉투 손잡이 한쪽이 찢어져 나갔다. 어찌어찌 남은 한쪽에 찢어진 손잡이를 묶어 열차를 타러 가는데 역에서 우리가 산 것과 같은 고등어를, 게다가 천 원 싸게 파는 것을 보고 헛웃음이 났다.


 청량리 역에 내려서 1호선을 타니 평일 낮인데도 열차 안이 북적북적했다. 가까스로 난 자리에 친구와 마주 보고 앉으니 맞은편에서 잔뜩 지친 표정으로 무릎에는 짐가방을, 다리에 간고등어를 끼고 앉은 친구의 모습에 입술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하차할 역이 되어 아직 몇 정거장 더 가야 하는 친구에게 인사하고 내리려고 친구에게 향하는 순간 고등어를 담은 종이 가방의 남은 한쪽 손잡이마저 찢어졌고, 내 고등어는 쿵 소리를 내며 지하철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고, 꾸벅거리며 졸던 친구도 놀라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터졌다. 


 친구와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가슴 앞에 고등어를 끌어안고 도망치듯 내려 그대로 집까지 왔다. 비가 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참고로 비가 오면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 우산을 쓸 수도 없으니 머리에 쓰고 집에 갈 작정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등어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팔다리가 다 저려 몸살약을 먹고 잠들었다. 생각해보면 기차역이나 지하철에서 황남빵, 성심당, 고래사 어묵 봉투를 든 사람들은 봤어도 고등어 봉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못 봤다. 다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처참히 뜯어져버린 봉투


 장거리 이동을 위해 탄생한 간고등어답게 냉동 포장이 녹았지만 상하지 않고 잘 도착했고, 집에서 먹어도 오동통한 살집과 고소함은 여전했다. 가슴에 꼬옥 품고 온 내 애착 고등어라 그런지 안동에서보다 더 맛있었다. 이제 ‘안동’ 하면 다른 의미로 고등어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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