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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Sep 05. 2022

해리포터와 책거리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을 통틀어 가장 여러 번 반복해 읽은 책은 J.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이다. 한번 본 것은 영화든 책이든 다시 눈이 가질 않는데 이 책은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를 만큼 많이 읽었다. 어릴 땐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이 책의 마지막인 7권이 나올 때 즈음에는 대학생이 되어 원서로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된 원서를 읽는 지성 있는 대학생이 되지 못했다.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그건 마치 과학의 날을 맞아 미래를 상상해 그린 그림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그린 것만 같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간 한두 번 원서 읽기에 도전한 적은 있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자기 전에 읽는다며 베개 옆에 책을 몇 달이고 두었다가 결국 자는데 거슬려 치우길 반복했다. 내 기억으로 첫 번째 챕터를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같았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드디어 작년에 해리포터 원서 한 권을 완독 한 것이다. 1,2권을 모두 완독하고 현재는 3권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는 중이다.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번역체의 어색함이 왜 나타나는지 이해할 수 있고, 작품을 더 심층적으로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니 원래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던 해리포터 시리즈가 더 좋아졌다.


 남들에게는 별 일 아닐지 모르나 내게는 큰 기쁨이자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책 한 권을 완독하면 책거리로 떡을 주문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작은 행사가 되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다음 책을 읽기 위한 원동력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편하게 떡을 주문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보통 최소 2-3kg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양도 많고 가격도 비싸다. 게다가 떡은 칼로리도 높고, 고탄수화물이라 이런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필요하다. 신나서 가장 좋아하는 떡집에서 떡을 주문하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다가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책거리가 뭐야?”


 책거리는 한자로는 세책례(洗册禮)라고 하며,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뗀 후 훈장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학동들이 간단한 먹거리와 술을 준비해 나눠먹는 우리의 전통 풍습이다.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지는 때에 따라 변동되나 필수적으로 올리는 음식은 송편으로, 속이 찬 송편과 빈 송편 두 가지를 준비한다. 속이 꽉 찬 송편처럼 학문을 채우길 바라는 마음을, 속을 비운 송편은 학문의 뜻을 넓히고 편견 없이 다른 이의 학식을 받아들이는 학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준비한다. 학문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길 기원하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떡제조기능사 실기 시험을 준비하며 학원에서 만들었던 기본 송편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만 해도 한 학기 교과서를 모두 떼고 나면 학기말에 학부형들이 학교로 떡을 교실로 보내주곤 했다. 전통 방식대로 송편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무지개떡이나 백설기를 준비해주셨다. 후련한 마음으로 따끈한 떡을 하나씩 받아 들고 친구들과 신나게 뜯어먹고 있으면 담임 선생님께서 한 학기를 잘 마쳐주어 고맙다고 칭찬해주며 책거리에 대해 설명해주신 덕에 책거리를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중학교 때부터는 책거리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여러 번 경험했기에 당연히 친구들도 알 것이라 생각했던 책거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무척 의외였다. 나와 동갑이거나 몇 살 더 어린 동생들에게 책거리에 대해 물어보니 ‘어렴풋이 들어 본 것 같긴 하지만 해 본 적은 없다.’ ‘전혀 모르겠다’는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동시에 수많은 것들이 생겨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문화 중의 하나가 책거리다. 다가오는 추석에 송편을 보면 사라져 가는 책거리 문화가 생각날 것 같다. 빵사랑 못지않게 떡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 정도면 그냥 탄수화물을 사랑하는 걸지도) 책거리와 같이 의미 있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화는 부디 오래오래 전승되길 바란다. 더불어 나의 원서 읽기도 오래오래 지속되어 꼭 7권까지 완독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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