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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pr 19. 2022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포켓몬빵의 인기가 뜨겁다. 어린이를 타깃으로 했던 포켓몬빵 열풍의 주역은 놀랍게도 어른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 타깃이 아니라 ‘90년대에 어린이였던’ 80-90년대생, 과거 어린이요 현재 30대 초중반 어른이들을 위한 재출시라 볼 수 있다. 나 또한 이 연령대에 포함되는 세대라 포켓몬빵의 사진과 띠부띠부씰 사진을 보고(실물은 아직까지 본 적 없다. 유니콘인가) 찔끔 눈물이 날 뻔했다. 나와 비슷한 세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포켓몬빵에 대한 추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구입하기도 했지만 빵 자체도 좋아해 무척이나 즐겨먹었다. 그 빵에는 우리의 유년 시절이 담겨있는 셈이다.


 포켓몬빵 말고도 그 시절 추억이 담긴,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지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우연히 발견하고 옛 생각에 잠기게하는 음식 몇 가지를 회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커피 수레다. 초등학교 때 즈음 살던 동네에 높이 100m 정도의 작은 산이 있었다. 학교 후문과도 연결되어 있어 체육시간이나 야회활동 시간에 학급 단위로 자주 방문했다. 담임 선생님이 만든, 나무에 붙어 있으면 술레가 잡지 못하고 나무에서 떨어져야만 터치할 수 있는 ‘매미 게임’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고, 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산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배드민턴 채를 들고 배드민턴장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 산에 대한 그보다 더 큰 기억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등산과 관련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갈망을 갖고 사는 어른이 된 지금이야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주말에 왜 산에 가는지 이해하지만 초등학교 땐 도대체 왜 일요일에 산에 왜 가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푸른 나뭇잎을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을, 맑은 공기를 쐴 수 있는 산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게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산에 가기 싫어하는 나를 데려가려고 엄마가 쓴 방법이 산 정상에서 파는 코코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주택가에 둘러싸인 얕은 산이지만 주민의 문화체육시설을 담당하는 복합 문화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체육시설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모임의 장인 바둑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산 정상에는 배드민턴장, 바둑을 둘 수 있는 공간, 운동기구 따위가 있었고 바둑 두는 곳 옆에는 늘 커피 수레가 있었다. 


 커피 수레에는 종이컵에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2대 2대 2의 비율로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저어 내미는 커피뿐만 아니라 코코아와 율무차도 팔았다. 이 즉석 제조 코코아 한 잔이 나를 산에 가게 하는 이유었다. 수제 초콜릿을 판매하는 가게에 방문해 매장에서 직접 수제 초콜릿을 녹여 제조한다는 핫초코를 먹었을 때도 이만큼의 행복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먹으면 그냥 밍밍한 싹구려 초코맛 나는 음료 정도로 생각할지 모를 코코아가 가슴 깊은 곳에서 저릿하게 남아있다. 다 마시고 나면 종이컵 아래 가라앉은 검은 코코아 가루가 남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엄마와 산에서 마시던 200원짜리 코코아를 유학파 초콜릿 전문가가 만든 만 원짜리 수제 핫초코보다 맛있다고 기억하는 것처럼.


 두 번째는 자판기 음료다. 요즘은 자판기 커피 마시기 쉽지 않다. 자판기도 많이 없어진 데다가 있다 해도 길에서 카페나 편의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판기를 이용할 일이 없다.


 요즘 시립 도서관 열람실을 다시 이용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주로 그곳에서 공부했으니 세월이 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거의 변한 게 없는 그 공간을 갈 때마다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괜히 기분이 묘하다. 가장 추억에 남는 건 열람실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 책상 위에 놓인 두 종류의 일간지다. 공부하기 싫을 때 신문을 읽는답시고 앉아서 괜히 이리 저리 만화를 찾으며 들썩거리던 신문이다. 그리고 그 옆에 캔음료 자판기와 뜨거운 음료가 종이컵에 나오는 자판기가 있다. 이 자판기 앞을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쉬는 시간이나 공부하기 싫을 때 자판기에서 음료 하나 뽑아 그걸 마시는 동안 친구와 수다 떠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고등학교 자습실 앞에도 자판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자판기 앞은 쉬는 시간이면 자습실 안 학생이 다 모이는 자리였다. 매일같이 마셨지만 이상하게도 졸업하고 한 번도 마신적 없는 코코팜이나,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음료 포카리스웨트를 주로 마셨다. 차갑고 달달한 음료를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던 시기였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중앙도서관 앞에는 등나무가 우거진 휴게 공간이 있었고 그 아래로 벤치 몇 개와 음료 자판기가 있었다. 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그곳에 나가 캔커피를 뽑아 마시며 잠을 쫓았다. 깜깜한 새벽 도서관 로비와 자판기 불빛만 반짝이던 나의 20대 초반 어느 초여름 밤의 풍경 속에 자판기가 있다. 내가 동전을 갖고 있지 않아도 친구 중 한 명은 꼭 잔돈이 있었다. 나는 마시지 않아도 친구가 자판기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면 나도 같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잔돈을 찾아주곤 했다. 각자 주머니에서 몇백 원씩 모으면 모두 음료를 뽑아 먹고 남을만한 돈이 됐다. 그 시절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자판기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면 누군가가 와서 동전을 빌려주는 장면이 꼭 나왔다. 다 같이 음료를 한 잔씩 뽑아 마시며 “넌 시험 언제 끝나냐” “시험 끝나면 집(고향)엔 언제 가냐” 등의 대화를 했다. 


 가장 최근에 자판기를 이용한 것은 지하철역에서 생수를 뽑았을 때다.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물을 뽑았다. 비싸다 생각하며 카드로 1,500원이나 하는 물을 샀다. 최대한 구석으로 가서 등을 돌리고 마스크를 살짝 내린 채 물을 마시고 얼른 마스크를 올렸다. 


 음료 자판기 옆에는 과자, 바나나, 샐러드까지 담긴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자판기가 있다. 다른 역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판기도 봤고, 책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별걸 다 파는 세상인데 이젠 자판기 앞이 예전처럼 따뜻하지는 않다. 자판기라는 기계의 본래 특성을 명확히 반영해 필요한 물건을 비대면으로 공급할 뿐이다. 자판기 옆에는 벤치와 쓰레기통이 있고, 그 주변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며 음료를 홀짝이던 사람들은 이제 다 카페로 옮겨간 것일까.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 앉아있는 것일까. 각자의 공간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은 음료를 마시며 메신저 속 대화를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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