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도보 8분. 그 8분 사이에 방앗간이 몇 개 있다.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늘도 참새는 가장 애정하는 나의 첫 번째 방앗간에 들어가 한 손 가득 빵을 안고 귀가한다. ‘진짜 내일부터 다이어트해야지’ 다짐하며. 사용 금액의 3%를 적립해주는 빵집 포인트가 어느새 29000점이 넘었다. 전체 금액 x에 0.03를 곱한 값이 29000 일 때, 전체 사용금액 x의 값을 구하라(답은 대충 96만 원 정도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려다가 생각이 포인트 29000점을 어떻게 야무지게 쓸까 샛길로 샌다. ‘평소엔 사 먹지 못하는 비싼 걸 먹어야지. 저 가게에서 아직 홀케이크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케이크를 먹어야겠다. 케이크 가격만큼 포인트를 모으기 전에 가게가 없어지진 않겠지?’
이 방앗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소중해 혹여 방송에 나와 유명해져 내가 이용하지 못할까, 장사가 잘 되어 동네를 떠나 번화가로 이전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가게다. 이 가게의 소금빵이 아주 일품이다. 물론 소금빵 말고도 모든 빵이 훌륭하다. 소금빵이 유행하기 전에는 퇴근 시간에도 소금빵을 구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늦은 오후에도 구할 수 없게 되고, 예약도 할 수 없게 되고, 인 당도 아닌 팀당 5개까지 구매제한이 걸려버리기까지 했다. 때문에 갈 수 있을 때, 쇼윈도로 흘긋거렸을 때 빵이 보인다면 꼭 들어가야 하는 방앗간이 되었다.
빵집 옆 블록에는 신흥 방앗간이 있다. 작년 여름쯤 생긴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로, 빵집과 더불어 나의 과한 탄수화물 섭취를 돕고 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가게인데 마침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매장이 생겼다. 가게 오픈일이 1차 백신 접종일로, 오전 반가였다. 오픈하자마자 먹을 수 있으니 이건 운명이다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첫인상은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다. 빨리빨리 민족인 내가 보기에 음식 나오는 속도도 너무 느렸고, 손님 응대도 엉망에 떡볶이도 국물도 밍숭 밍숭 한 것이 썩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퇴근길 매일 그곳을 지나면서 매콤한 떡볶이 향기에 한 번, 늘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포장객들에게 두 번 마음이 흔들리고야 말았다. 첫날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기회를 주자는 마음으로 오픈 후 3개월쯤 후에 재방문해보았다. 역시 누구에게나 기회는 한 번 더 주어야 한다. 조리 속도와 주문받는 스킬이 몰라보게 향상된 것뿐만 아니라 맛도 처음 먹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이후로 이곳은 나의 신방앗간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줘야 하는.
구 방앗간도 있다. 목요일마다 3번 출구 앞에 오는 타코야끼 트럭 앞에는 늘 긴 줄이 있었다. 그곳의 타코야끼는 알 자체가 크고 그 안에 있는 문어(라고 쓰지만 대왕 오징어다)도 꽤 큼직한 것이 매력이다. 이 매력을 나만 아는 것이 아닌 듯 줄 서지 않고는 먹기 힘들다. 줄이 짧아 보여 얼른 섰다가 30분 이상 기다리게 된다. 한 판을 굽는데 20분 이상 소요되고, 한 판이 완성되면 한 번에 줄이 확 줄어들기 때문에 줄이 짧다는 것은 조금 전에 한 판이 완판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갓 반죽을 올리기 시작했다면 최소 20분 이상이다. 틀에 기름칠을 하고, 반죽을 붓고, 야채와 문어를 넣고, 뒤집고, 트럭 안에서 조리하던 사장님이 밖으로 나와 뒤집기를 다 마치고 다시 트럭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마쳐야 10분대에 타코야끼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초조하게 남은 앞사람의 숫자와 불판 위에 남은 타코야끼 개수를 세며 나는 몇 개를 살까 눈치게임을 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귀한 타코야끼인 것이다. 이 지독한 기다림과 눈치게임 후에 내 바로 앞사람이 남은 타코야끼를 전부 주문했을 때의 좌절을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귀한 팁이다.
짧은 줄에 혹해 한겨울에 40분을 기다린 적도 있었으므로 기다리는 손님의 숫자와 더불어 판 위의 조리 상태까지 살피고 나서야 줄을 서는 경지에 올랐을 때 즈음 트럭이 서는 자리가 바뀌었다. 그간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타코야끼트럭 앞에 줄 서는 사람들로 인해 보행자 통행에 곤란을 겪고 결국 한 블록 뒤로 옮긴 것이다. 아예 다른 동네로 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긴 하지만 그 한 블록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역시 장사는 목이 중요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블록 차이지만 그곳은 우리 집에 가는 길이 아니다. 늘 다니는 길에 타코야키 트럭이 없으니 나도 모르는 새 타코야키를 끊게 됐다. 내 식욕이 겨우 이정도라니 스스로에게 배신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여긴 이제 더 이상 나의 방앗간이 아니게 되었다.
오늘은 꼭 집에 오는 길에 앞머리를 잘라야지. 매일 아침 너무 길어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는 앞머리를 손질하며 다짐한다. 하루 종일 앞머리 때문에 답답해하면서 ‘집에 갈 때 앞머리, 집에 갈 때 앞머리’ 되새긴다. 그런데, 지하철 하차와 동시에 집에 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어서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울 생각에 잠겨 오늘도 또 그냥 집에 와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독한 집순이긴 해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집에 오는 것에만 몰두하여 또 잊을 수가 있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오늘도 앞머릴 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 있다가 씻고 나서야 머릴 빗으며 ‘아 앞머리!’하고 탄식한다. 결국 나의 귀가 본능에 진 현재는 앞머리를 길러 넘기기로 했다. 과다하게 섭취한 영양분은 죄다 앞머리로 가는지 머리가 참 빨리도 자란다.
왜 미용실은 내 방앗간이 될 수 없는가. 가지 않겠다 수없이 다짐한 방앗간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리는데, 가겠다 수백 번 되뇐 미용실은 어찌하여 이리도 새카맣게 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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