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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May 12. 2022

귀가 본능과 방앗간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도보 8분. 그 8분 사이에 방앗간이 몇 개 있다.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늘도 참새는 가장 애정하는 나의 첫 번째 방앗간에 들어가 한 손 가득 빵을 안고 귀가한다. ‘진짜 내일부터 다이어트해야지’ 다짐하며. 사용 금액의 3%를 적립해주는 빵집 포인트가 어느새 29000점이 넘었다. 전체 금액 x 0.03 곱한 값이 29000 일 때, 전체 사용금액 x 값을 구하라(답은 대충 96만 원 정도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려다가 생각이 포인트 29000점을 어떻게 야무지게 쓸까 샛길로 샌다. ‘평소엔 사 먹지 못하는 비싼 걸 먹어야지. 저 가게에서 아직 홀케이크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케이크를 먹어야겠다. 케이크 가격만큼 포인트를 모으기 전에 가게가 없어지진 않겠지?’


  방앗간으로 말할  같으면 너무 소중해 혹여 방송에 나와 유명해져 내가 이용하지 못할까, 장사가  되어 동네를 떠나 번화가로 이전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가게다.  가게의 소금빵이 아주 일품이다. 물론 소금빵 말고도 모든 빵이 훌륭하다소금빵이 유행하 전에는 퇴근 시간에도 소금빵을 구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늦은 오후에도 구할  없게 되고, 예약도   없게 되고,  당도 아닌 팀당 5개까지 구매제한이 걸려버리기까지 했다. 때문에   있을 , 쇼윈도로 흘긋거렸을  빵이 보인다면  들어가야 하는 방앗간이 되었다.


 빵집 옆 블록에는 신흥 방앗간이 있다. 작년 여름쯤 생긴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로, 빵집과 더불어 나의 과한 탄수화물 섭취를 돕고 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가게인데 마침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매장이 생겼다. 가게 오픈일이 1차 백신 접종일로, 오전 반가였다. 오픈하자마자 먹을 수 있으니 이건 운명이다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첫인상은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다. 빨리빨리 민족인 내가 보기에 음식 나오는 속도도 너무 느렸고, 손님 응대도 엉망에 떡볶이도 국물도 밍숭 밍숭 한 것이 썩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퇴근길 매일 그곳을 지나면서 매콤한 떡볶이 향기에 한 번, 늘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포장객들에게 두 번 마음이 흔들리고야 말았다. 첫날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기회를 주자는 마음으로 오픈 후 3개월쯤 후에 재방문해보았다. 역시 누구에게나 기회는 한 번 더 주어야 한다. 조리 속도와 주문받는 스킬이 몰라보게 향상된 것뿐만 아니라 맛도 처음 먹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이후로 이곳은 나의 신방앗간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줘야 하는.


 구 방앗간도 있다. 목요일마다 3번 출구 앞에 오는 타코야끼 트럭 앞에는 늘 긴 줄이 있었다. 그곳의 타코야끼는 알 자체가 크고 그 안에 있는 문어(라고 쓰지만 대왕 오징어다)도 꽤 큼직한 것이 매력이다. 이 매력을 나만 아는 것이 아닌 듯 줄 서지 않고는 먹기 힘들다. 줄이 짧아 보여 얼른 섰다가 30분 이상 기다리게 된다. 한 판을 굽는데 20분 이상 소요되고, 한 판이 완성되면 한 번에 줄이 확 줄어들기 때문에 줄이 짧다는 것은 조금 전에 한 판이 완판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갓 반죽을 올리기 시작했다면 최소 20분 이상이다. 틀에 기름칠을 하고, 반죽을 붓고, 야채와 문어를 넣고, 뒤집고, 트럭 안에서 조리하던 사장님이 밖으로 나와 뒤집기를 다 마치고 다시 트럭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마쳐야 10분대에 타코야끼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초조하게 남은 앞사람의 숫자와 불판 위에 남은 타코야끼 개수를 세며 나는 몇 개를 살까 눈치게임을 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귀한 타코야끼인 것이다. 이 지독한 기다림과 눈치게임 후에 내 바로 앞사람이 남은 타코야끼를 전부 주문했을 때의 좌절을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귀한 팁이다. 


 짧은 줄에 혹해 한겨울에 40분을 기다린 적도 있었으므로 기다리는 손님의 숫자와 더불어 판 위의 조리 상태까지 살피고 나서야 줄을 서는 경지에 올랐을 때 즈음 트럭이 서는 자리가 바뀌었다. 그간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타코야끼트럭 앞에 줄 서는 사람들로 인해 보행자 통행에 곤란을 겪고 결국 한 블록 뒤로 옮긴 것이다. 아예 다른 동네로 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긴 하지만 그 한 블록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역시 장사는 목이 중요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블록 차이지만 그곳은 우리 집에 가는 길이 아니다. 늘 다니는 길에 타코야키 트럭이 없으니 나도 모르는 새 타코야키를 끊게 됐다. 내 식욕이 겨우 이정도라니 스스로에게 배신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여긴 이제 더 이상 나의 방앗간이 아니게 되었다.


 오늘은 꼭 집에 오는 길에 앞머리를 잘라야지. 매일 아침 너무 길어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는 앞머리를 손질하며 다짐한다. 하루 종일 앞머리 때문에 답답해하면서 ‘집에 갈 때 앞머리, 집에 갈 때 앞머리’ 되새긴다. 그런데, 지하철 하차와 동시에 집에 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어서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울 생각에 잠겨 오늘도 또 그냥 집에 와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독한 집순이긴 해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집에 오는 것에만 몰두하여 또 잊을 수가 있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오늘도 앞머릴 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 있다가 씻고 나서야 머릴 빗으며 ‘아 앞머리!’하고 탄식한다. 결국 나의 귀가 본능에 진 현재는 앞머리를 길러 넘기기로 했다. 과다하게 섭취한 영양분은 죄다 앞머리로 가는지 머리가 참 빨리도 자란다.


  미용실은  방앗간이   없는가. 가지 않겠다 수없이 다짐한 방앗간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리는데, 가겠다 수백  되뇐 미용실은 어찌하여 이리도 새카맣게 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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