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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pr 14. 2022

K-패스트푸드, 아침엔 콩국

 초록창에 ‘서울 콩국’을 검색하면 ‘제발 누가 콩국 좀 서울에서 팔아줘요’, ‘서울에는 콩국 없나요?’ ‘서울 콩국수 맛집’ 등이 출력된다. ‘콩국수’ 아니고 ‘콩국’이라고!! 애타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겨보지만 광주 콩국 맛집, 대전 콩국 맛집, 그리고 5할 이상은 내가 경주에서 이틀 연속으로 먹었던 콩국 가게가 나온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처참하게 깨지는 순간이다. 콩국은 콩을 갈아 국물을 짜낸 음식이다. 콩이 주원료이니 단백질을 비롯한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드러워 소화에도 용이해 중국에서는 아침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몇 년 전 대만 여행 시 콩국을 먹지 못해 콩국이 어떤 맛일까 늘 궁금했기에 이번 경주 여행 두 번째 날 아침은 주저 없이 콩국으로 골랐다. 게다가 이 가게의 영업시간은 무려 새벽 다섯 시. 포털 사이트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내 눈을 의심하여 블로그 후기를 다시 찾아봤다. 가게 정면 사진을 확대하니 출입문에 붙은 영업시간은 분명 05:00이다. 인기 관광지에 갈 때는 사람 적은 시간에 방문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내게 딱 적당한 곳이다.


 콩국이라고 하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불리고 삶고, 어쩐지 맷돌을 직접 갈아 만든 정성의 집합체요 슬로푸드의 정석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콩국은 패스트푸드의 끝판왕이다. 제조 과정에 숨은 긴 시간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벽에 붙은 유명인의 사인을 훑어보고, 전통성과 신빙성을 부여해주는 것 같은 서까래를 구경하는 잠깐 사이 서빙이 끝났다. 주문 후 2분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도착하는, 놀라운 속도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별도의 조리 없이 보온 통에 담아 둔 콩국을 그릇에 덜어 메뉴별로 토핑만 달리하여 바로 내어주기 때문이다. 반찬도 무말랭이 하나. 참 단출한지만 꽉 찬 아침상이다. 하얀 김을 솔솔 뿜어내는 콩국을 휘휘 저으면 아래 들어있던 설탕, 콩가루, 그리고 콩국의 별미인 잘게 잘린 찹쌀도넛이 숟가락에 걸린다. 토핑을 섞으면서 입으로 후후 불어 한 김 식혀준 뒤 드디어 한 술을 뜨는 순간 입안에 고소함과 달콤함이 퍼진다. ‘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다’가 아니라 행복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고소하고 따뜻하고 풍요로운 음식이다.


 허겁지겁 콩국을 들이켜다시피 하고 나니 가게에 들어와서 그릇 바닥을 싹싹 긁을 때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참고로 난 음식 먹는 속도가 느려 급식을 먹던 시절에는 항상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는 민폐를 끼쳤고, 회사 생활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 속도에 맞추느라 늘 밥을 절반밖에 먹지 못해 2시면 배가 고파지는 슬픈 식사 속도를 가진 사람이다. 특히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국밥류를 먹을 때면 2/3는 남겨야 하는 애석한 사연을 가진 내가 이 속도라니. 이 정도면 패스트푸드 중에서도 전설급이다.


 다음 날 아침도 같은 가게를 찾았다. 이 가게를 들렀다 가면 꽤 돌아가야 했음에도 놓칠 수 없었다. 이 날은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새에 흡입하고 한 그릇 더 주문했다. 앉은자리에서 혼자 두 가지 메뉴를 주문한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두 번째 콩국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서울에서 이 콩국을 판매하는 상상을 꽤 디테일하게 했다. 상권, 영업시간, 포장용기, 가격, 음식 가짓수 등을 구체적으로 머리에 그렸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는 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떻게 하면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궁리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어른 같다. 생계와 책임을 가슴에 끌어안고 버둥거리는 어른. 그러다가 문득, 백종원 대표가 한 방송에서 한 말이 생각 사이를 관통한다. “왜 없는지 생각해봤슈? 남들이 안 할 땐 다 이유가 있는 거예유.”


 검색해보니 마산, 대구, 광주 등 남쪽 지방에는 콩국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다. 왜 서울에는 없는 것일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조만간 전국 콩국 투어라도 다녀와야겠다. 벚꽃여행을 떠났다가 콩국 투어를 다짐하다니. 너무 나다워 우습다. 진한 국물만큼 여운이 진하게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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