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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n 25. 2022

부대찌개와 물망초

한국전쟁 72주년

 회사를 다닐 때 자주 갔던 식당 중 점심엔 부대찌개, 저녁엔 고기를 파는 곳이 있다. 셀프 반찬대에는 부대찌개 가게에서 보기 힘든 쌈무와 부추 절임을 볼 수 있다. 고깃집을 차렸는데 점심 장사를 위해 부대찌개를 만든 건지, 부대찌개 가게로 시작했다가 사무실이 많은 동네에서는 저녁 장사가 힘들어 고기 판매를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무튼 조금 생소한 조합인 것은 맞는듯하다.


 부대찌개와 생소한 조합이라 하니 생각나는 날이 있다. 대학 시절 교내 언론사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었다.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 특집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주최한 전시 취재 및 납북가족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납북인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 지역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을 가리키는 사회용어다(네이버 백과사전).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추정치는 약 10만 명이다. 내가 찾아간 날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납북 희생자를 기억하는 한 주’를 주제로 하는 전시 설명도 해주시고, 협의회 홍보도 하고 계셨다. 전시를 관람하고 한 시간 정도 취재를 진행했는데 60년 전 일인데도 생생히 기억하고 계시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 당시 경험을 이야기를 하실 때의 표정과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감정에 숙연해졌다. 


 2003년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모티브로 제작되었고, 이후 유해발굴사업이 관심을 받았다. 나는 한국전쟁 60주년 특집기사를 위해 현충원 본사와 발굴현장 답사를 다녀오며 유해발굴감식 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해발굴사업은 전쟁 중 사망했으나, 당시 수습하지 못한 유해를 발굴하는 국가사업이다. 전투기록과 지역주민, 참전용사의 증언을 토대로 대략적인 탐사지역을 결정한 후 매장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서 발굴을 진행한다. 발굴한 유해를 수습하여 가족을 찾고, 현충원에 안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당한다. 매장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통상 100에서 120개소를 굴토해야 1구를 발굴할 수 있다고 한다. 찾은 유해의 신원을 밝히기도 쉽지 않다. 발굴까지는 정부의 의지로 가능하지만, 발굴 이후 신원 파악을 위해서는 실종 가족의 DNA 등록 등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투가 산악지형에서 이루어진 만큼 유해발굴을 위해서 매일 산에 오르내려야 하고, 더위와 벌레와 싸워야 하며, 점심은 산 위에서 도시락으로 대체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나라를 위해 싸운 호국용사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찾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종종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유전자 등록 광고를 볼 때면 유해 발굴 현장 답사를 갔던 그 여름날의 산등성이가 떠오른다. 동시에 또 안심이 된다. 나의 희생과 상처를 기억해주고, 늦더라도 잃어버린 것을 찾아 원래 자리로 돌려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전투가 있었던 그 자리에서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못한 전사자들이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땅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우연히 길을 가다 발견한 유해발굴감식단 차량. 버스정류장 광고판 등에서도 해당 문구를 볼 수 있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수행평가로 ‘우리 가족의 근현대사’라는 과제를 받은 적 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역사책에 나오는 그런 대단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전혀 없어 우리 가족은 딱히 과제를 할 만한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조부모님의 삶이 역사 그 자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근대소설에 나올 것 같은 일을 직접 겪으셨고, 그 이후 독재정권을 살아온 이야기는 근현대사 교과서보다 더 생생했다. 그 수행평가로 인해 역사는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족도 깊이 새겨진 전쟁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MZ세대인 나는 전쟁의 상흔에 가까이 있지만 직접적인 경험은 없는 세대다. 불과 60여 년 전 일이지만 책으로 배웠기에 실제 시간보다 더 먼 것처럼 느껴진다. 경험은 하지 못했지만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겪고 있고, 그들의 숫자는 줄어가고 있다. 


 납북인사 가족 인터뷰 후에 함께 식사를 위해 근처 부대찌개 가게로 갔다. 이 날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아마 이 아이러니한 메뉴, 부대찌개 때문일 것이다. 어르신께서는 식사 중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부대찌개야 말로 전쟁이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 아닌가.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주한미군이 먹던 햄, 소시지 등을 가져다 가정에서 흔히 구할 수 있었던 김치, 두부 등을 넣고 끓인 것이 부대찌개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60년 전 비극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그 비극으로 시작된 음식을 먹는데 그날 광화문 광장에는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쬐고 한없이 평온하고, 조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안에는 인터뷰를 위한 노트와 카메라, 그리고 물망초 배지가 있었다. 6.25 납북인사 가족협의회에서 납북자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제작한 것이다.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물망초의 꽃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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